중세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도시, 독일에서 가장 맛있는 소시지를 맛볼 수 있는 곳, 장난감과 인형의 도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곳, 그리고 나치의 수도. 이것은 모두 뉘른베르크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이처럼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가 펼쳐지는 뉘른베르크에는 오감을 만족하게 하는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생강 빵과 가장 맛있는 소시지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독일 유수의 상공업 도시였던 뉘른베르크는 화가 뒤러로 대표되는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도시의 대부분이 소실됐지만 훌륭하게 복구해 지금은 중세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중 여행자가 몰리는 장소는 화가 뒤러의 집과 성 제발트 교회, 성 로렌츠 교회, 시립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펨보하우스 등이다. 명물인 생강 빵과 하얀색 소시지는 독일에서 가장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아직 먼 이야기지만 12월에는 이곳에서 유럽 최대 크리스마스 마켓을 서성이며 색다른 경험도 쌓을 수 있다.
보통 중앙역 건너편에 보이는 쾨니히 문에서 이 도시의 역사 탐방이 시작되지만 이에 앞서 뉘른베르크 국립극장부터 둘러보자. 극장은 성벽 바깥쪽, 중앙역 출구에서 나와 왼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나타난다. 바그너 작곡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명가수)'의 배경이 된 이곳은 오래전부터 성악가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장소다. 물론 지금도 오페라와 함께 실내악, 어린이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들이 열린다. 바그너 기념비가 있는 극장 앞 광장은 시민들의 휴식처이면서 '바그네리안'(바그너 애호가)의 성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성벽 방면으로 길 하나만 건너면 구 시가로 넘어갈 수 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물은 1477년 완공된 성 로렌츠 교회다. 군더더기 없는 고딕 교회의 외양에 돌과 나무를 사용한 소박한 내부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이어서 성령 양로원을 지나 구 시가지 중심에 있는 하우프트 마르크트 광장에 도착하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이 보인다. 연말에 화려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장소가 바로 여기다. 이 광장은 성모교회, 시청사 등 옛 건축물이 어우러져 중세 풍경을 연출한다. 그중 14세기에 지어진 성모 교회는 바이에른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 양식의 교회로 프라하의 성 비투스 성당을 건축한 페터 팔러의 작품이다. 매일 정오에 교회 앞은 시계탑 인형극을 보기 위해 목을 길게 뺀 사람들로 붐빈다. 1509년 제작된 특수장치 시계가 정오를 알리면 7명의 선제후들이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4세의 주변을 세 번 돌며 경의를 표한다.
◆르네상스 미술 완성 뒤러의 고향
중앙광장의 또 다른 명물은 기념탑인 쇠너 부르넨이다. 바닥을 뚫고 솟아오른 것 같은 모양의 이 탑은 예언자와 중세 영웅 등 40여 명의 조각으로 세밀하게 장식돼 당시의 뛰어난 세공 기술을 보여준다. 탑 남서쪽의 철문 앞엔 사람들이 항상 줄지어 있다. 이음새가 없는 황금 링이 철창에 매달려 있는데 이것을 세 번 돌리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시내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기에는 카이저부르크만 한 곳이 없다. 도시 북쪽에 우뚝 서 있는 카이저부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뉘른베르크에 들를 때 머물던 성이다. 이곳은 12세기에 건설을 시작해 16세기에 지금의 형태로 완공되었다고 한다. 성벽 위에 오르면 빨간 지붕으로 뒤덮인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 귀족들이 살았던 성 내부는 황제의 방, 예배당, 그리고 깊이 60m의 우물 등으로 구성돼 있다. 또, 성 일부는 유스호스텔로 고쳐 여행자들에게 개방하고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황제의 성에서 하루쯤 묵어보자.
뉘른베르크는 독일 르네상스 미술의 완성자로 불리는 알브레히트 뒤러가 태어난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카이저 부르크 바로 앞에는 뒤러가 생을 마칠 때까지 20여 년간 살던 목조 주택이 있다. 지금은 이 집을 뒤러가 살던 모습대로 복구해 알브레히트 뒤러 하우스라는 이름의 박물관으로 사용한다. 이곳에는 그가 남긴 그림 일부와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덤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히틀러의 흔적 고스란히
히틀러가 사랑한 도시답게 뉘른베르크에는 나치의 광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사적도 있다. 바로 나치 전당대회장. 히틀러는 거대한 원형경기장을 지어 이곳에서 광신적인 전당대회를 치르며 힘을 과시해 나갔다. 서서히 나치의 수도가 된 뉘른베르크는 나치의 시대가 막을 내린 곳이기도 하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뉘른베르크 법원 600호 법정에서 군사재판이 열리고 주요 전범들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법원 내 재판 기념관과 원형경기장 안 박물관에는 나치와 관련된 자료들을 여과 없이 공개, 역사의 오점을 기록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밖에도 르네상스 시대의 장난감을 소장한 장난감박물관, 세계 최초의 기관차가 있는 철도박물관, 천문대 등 볼거리가 많다. 독일 최대 규모의 문화사 박물관인 국립게르만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약 130만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사실,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에 있는 몇몇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거점으로 뉘른베르크를 선택한 것은 순전히 소시지와 맥주 때문이었다. 숯불 향이 나는 소시지와 풍미가 느껴지는 밀맥주의 조화를 입안 가득 느끼고 싶었달까. 뉘른베르크 소시지는 14세기 초부터 판매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역사가 길다. 그때부터 오랜 전통을 가진 가게들이 옛날 방식대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독일 다른 지역의 소시지보다 작고 색깔이 연한 것이 특징이며 독특한 향과 씹는 맛이 일품이다. 히틀러가 이 도시를 사랑한 이유가 소시지와 맥주에 반해서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2차 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을 받아 온 도시가 파괴되었지만 잘 복원된 덕분에 지금은 전쟁의 상흔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옛 모습 그대로여서 당시 거주자들과 함께 산책하는 느낌마저 든다. 살아 있는 독일 역사박물관, 뉘른베르크는 역사를 피부로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훌륭한 장소가 될 것이다.
전 '대구문화' 통신원 android201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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