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봐야 할 아이가 여섯이나 되는데 일은 못하고 병원비는 산더미입니다."
풍선 하나로도 까르르 웃으며 뛰어노는 다섯 살 여자아이 아현이. 환하게 웃고 있던 아이가 '치료받으러 가자'는 엄마 이은정(42) 씨의 말에 금세 울상이 됐다. 겉보기엔 또래 아이들과 별다르지 않지만, 아현이의 배와 허리, 허벅지에는 벌건 화상 상처가 뒤덮여 있다.
지난달 20일 씻으려고 데워둔 물을 뒤집어쓰면서 아이의 몸에도 엄마의 마음에도 상처가 생겼다. "내가 조금만 더 잘 돌봤더라면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요. 아이가 아픈 것도 힘든 일인데 수술비와 치료비를 생각하면 막막해져요."
◆엄마가 사는 원동력, 여섯 남매
아현이의 엄마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23살의 나이에 결혼해 집안 살림은 어려워도 만족하며 살았다. 결혼할 당시 아현이 아빠는 가업으로 물려받은 섬유공장을 운영했지만 워낙 규모가 영세해 엄마까지 나서 일을 도와도 생활이 빠듯했다. 그래도 책임감 강한 남편을 믿고 의지하면서 힘을 얻었다. "사업이라고 해도 가내수공업 수준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남편이 자부심을 가지고 하는 일이라 돈은 안 돼도 열심히 살았어요."
결혼하고 곧이어 큰아들(19)이 태어났고, 뒤이어 둘째 아들(17), 셋째 아들(15), 넷째 아들(12)까지 아들 넷이 태어났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집 안에 큰 변화가 생겼다. 섬유공장이 어려워지면서 문을 닫았고, 아빠는 건설 일용직으로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다. 공장 일만 돕던 엄마도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다. 엄마는 식당 아르바이트며 공공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엄마에게 또 다른 선물이 찾아왔다. 아현이와 아현이의 언니 가희(6), 두 딸이었다.
"기술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일용직뿐이었는데 처음엔 일을 구하러 왔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내성적이었어요. 하지만 애들이 있잖아요. 애들 생각하니깐 용기가 나더라고요."
◆뜨거운 물에 화상 입은 막내 아현이
식구가 늘면서 집안 살림은 팍팍해져만 갔다. 책임감 강하던 아빠는 사업실패의 충격과 생활고로 인해 몸도 마음도 약해지고 있었다. 집안을 책임지는 일은 엄마 몫이 됐다.
엄마는 아파트 청소일로 생활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월급은 70만원으로 적었지만 아현이와 가희 두 자매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에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아빠도 종종 건설 일용직으로 돈을 벌어오긴 했지만 지난 설 이후로는 그마저도 끊겼다.
30년 넘은 낡은 집은 여름이면 비가 샜다. 겨울에는 비싼 기름 값 때문에 거실에는 연탄난로를 두고 전기장판에서 추운 밤을 보내야 했다. 경제상황은 어려웠지만 엄마는 삐뚤어지지 않고 착하게 자라는 여섯 남매가 고마웠다. "경제적 고비가 올 때마다 점점 무너지는 남편을 보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나쁜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아이들이 있으니까, 아이들은 내가 일하고 살아가는 이유이자 희망이죠."
그날도 평소와 다름 없이 일하고 돌아온 엄마가 두 딸을 씻기려고 거실 연탄난로 위에 냄비를 올려 물을 데웠다. 어린 두 딸은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엄마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딸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막내딸 아현이는 냄비 안에 든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채였다.
너무 놀란 나머지 엄마는 아이를 업고 집 앞 병원으로 뛰어갔다.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에 엄마는 119로 전화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엄마를 막막하게 만드는 병원비
아현이는 배와 허리, 허벅지 등에 2도 화상을 입고 큰 수술까지 했다. 수술 후에도 벗겨진 피부 때문에 열흘간이나 중환자실에 있어야 했다. 하루에 한 번 치료 붕대를 교체할 때마다 다섯 살 아이가 겪기에는 너무 큰 고통에 울부짖었다. 엄마는 아이가 없는 곳에서 숨어서 울었다.
다행히도 아현이의 상처는 생각보다 빠르게 아물고 있다. 엄마의 바람처럼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겼고, 2차 수술이 필요 없을 정도로 수술 경과가 좋다.
하지만 엄마의 걱정은 더 늘었다. 수술비만 700여만원이 들었고, 고가의 화상치료제까지 사용하다 보니 병원비가 산더미처럼 불었다. 아현이를 돌보느라 엄마는 일자리까지 잃었다. 70만원 벌던 월급조차 없어 집에 남은 다섯 아이들은 큰오빠가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으로 라면만 겨우 끓여 먹고 있다. 게다가 엄마 자신의 몸도 성치 않다. 당뇨 때문에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담당 의사는 아현이의 퇴원이 예상보다 빠를 것 같다는 기쁜 말을 전했지만, 엄마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퇴원을 해도 통원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치료비가 들지도 알 수 없다.
"경제적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이 있으니까, 아이들이 자라면 다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에 버텼어요. 병원비만 해결되고 나면 또 버틸 거예요. 저는 엄마잖아요."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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