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名 건축기행] <11>서구어린이도서관(대구시 서구 문화로 123)

안동에만 있는 'ㅁ자' 뜰집 형태…하늘 열린 공간서 아이들 꿈 키워

도시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아름다운 거리 만들기, 마을조성 등 우리 도시 환경의 변화를 '디자인'이라는 명분으로 분칠하고 치장하여 돋보이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지만 정작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대구다움은 무엇인가'에 대한 거대한 담론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18세기 영국의 시인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의 "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말처럼 도시는 인류 역사의 오랜 총체적 누적의 산물이다. 또한 도시는 인간과 사회가 만든 문명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도시의 물리적 형태는 속도를 앞세운 성장의 변화를 지속해 왔으며, 앞으로는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디지털 환경이 '문화'를 매개로 무한경쟁에서 지속 가능한 도시의 생존과 경쟁력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건축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공유하는 것이라는 명제가 더욱 절실해지는 시점에서 또 다른 세상과 만나는 거대한 소통의 공간인 도서관을 주목하게 된다.

대구광역시의 대표적인 공기업인 대구도시개발공사는 창사 20주년 기념사업으로 서구에 문화공간을 확충하고 지역민의 지식과 정보습득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어린이도서관 설립을 계획하였다. 수익의 사회 환원의 일환이기도 했다. 서구어린이도서관은 어린이전용도서관 설립을 목적으로 한 설계경기를 통하여 당선된 작품으로, 2010년 3월 개관하였다.

한국화의 특징이 비워진 여백의 아름다움인 것처럼 우리의 도시 또한 도로, 공원, 하천, 마당 등 비워진 공간의 연속적인 연계가 도시를 유기체적인 생명력을 가지게 한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그릇은 비어 있는 부분이 물건을 담을 수 있는 실용성이 있는 것처럼 건축 또한 물리적 구성요소인 바닥, 벽, 지붕 등으로 어떻게 채우느냐가 아닌 어떻게 어디를 비우는가에 그 쓰임이 있다 하겠다.

어린이도서관은 도심의 열린 공간(OPEN SPACE)인 이현공원과 연계하여 도시축 선상에 남측 진입부 전면을 비워둠으로써 도서관 이용자들의 다양한 활동 및 진입이 가능하도록 해 놓았다. 또 도서관 내부의 열려진 마당과 투명하게 연결된 코어의 배치로 북측 후면 공원의 시각적 연속성과 흐름을 이어준다.

어린이도서관의 배치는 '우물 집' 'ㅁ자 집'등으로 불리는 뜰 집의 형상을 지녔다. 한국전통건축 가운데 반가(班家) 주택의 한 유형인 뜰 집은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산물이며, 전승해야 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지금은 경상북도 안동지역 일대 등에 남아 있는 살아있는 주거유형이기도 하다. 어린이도서관은 중앙의 뜰(다른 말로 중정(中庭)이라고도 함)을 중심으로 ㅁ자 형태의 한 채로 결합되어, 하늘과 땅으로 열린 공간감, 지붕의 그림자로 느끼는 조형미, 쌈지 마당이 주는 넉넉함의 지혜를 오롯이 담고 있다.

공간의 진입으로부터 유도된 동선의 흐름은 외부공간을 자연스럽게 뜰의 공간으로 이어주고, 뜰에서는 시선이 수직적으로 상승하면서 조금씩 내부로 들이민 테라스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상승해 하늘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뜰에서는 이현공원을 담아냄으로써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이 무한한 공간, 상호 관입하는 공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공간의 구성은 뜰을 중심으로 북카페와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가변형 칸막이가 설치된 전시공간과 유아열람실이 자리하고 수직적으로 상승하면서 조금씩 내부로 들이민 테라스를 통해 어린이 열람실, 디지털 자료실, 시청각실과 문화교실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마주하게 층을 달리하면서 배치되어 있다.

도시라는 장소에는 아날로그적인 추억이 축적되어 있다. 시간의 흔적이 역사가 되고, 생활의 흔적이 문화가 된다. 이처럼 어린이도서관 내부의 공간은 수평 또는 수직으로 변화되는 다양한 느낌을 만나게 되어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의 모습과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듣고 느낄 수 있다. 다양한 크기와 공간감을 가진 실내 및 옥외의 휴식공간을 통해 삶의 여유를 담아내고 있다.

프랑스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는 "독서는 위대한 인물들과 대화하는 것"이라 했다. 도서관은 어린이들에게 책 세상을 통해 만나게 될 위대한 인물들을 불러내어 한바탕 신바람 나게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따사로운 봄볕이 화창한 날 디지털시대 SNS의 홍수 속에서 잠시나마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책과의 만남을 가져보자.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고 새로운 풍경을 만나러 나서 보는 것은 어떨지….

글=(주)건축사사무소 미르건축 대표이사. 건축사 조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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