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식당, 선산식당, 동해반점…. 까마득하지만, 1970년대에 대구에서, 특히 대학생이었다면 대부분 기억하는 이름이다. 아무도 부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수업이 끝난 오후 늦은 시간이면 경북대생은 50번이나 51번 시내버스를 타고, 계명대생은 13, 19번, 효성여대생은 2, 7번 같은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왔다.
아직 모습이 남아 있는 코리아백화점이나 한일극장 등 내리는 곳은 달라도 하나 둘 모인 곳은 향촌동 일대였다. 또, 열흘 동안의 병영집체 훈련에서 돌아온 동기 남학생을 위해 남은 여학생들이 술판을 차리던 곳이기도 했다.
그때 너나 할 것 없이 왜 향촌동으로 모였는지는 잘 모른다. 6'25 때 전국에서 피란온 예술가들이 향촌동에 모였다는 이야기에 그 정취를 느끼고 싶었는지, 마땅히 갈 곳도 없었던 터에 그나마 비분강개하며 유신 독재를 성토할 장소가 되어서였는지, 아니면 학교에서 얻어 마신 최루가스로 매캐한 목을 막걸리로 풀고 싶었는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노는 장소를 선택하는 기준은 경제력이었다. 맞은편 쪽은 대구 최고의 번화가인 동성로였고, 향촌동은 그야말로 학생증이나 시계를 저당 잡혀가며 막걸리를 마실 수 있었던 실비 선술집 길이었다. 무단 횡단하면 2, 3초 만에 건널 길 하나가 경계였지만, 이쪽과 저쪽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해도 세월이 지나면 추억은 다르게 적히는 법이지만, 70년대 중'후반의 향촌동은 대개 이런 느낌으로 남아있다.
대구시장 새누리당 경선에 출마한 한 후보가 이 일대를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들 식당가 골목과 이어진 경상감영공원과 옛 대보'무궁화백화점 일대에 3천억 원을 들여 다용도의 '228 브릿지 타워'를 지어 '창의적 도심 재생 특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도심 개발은 참 어려운 문제다. 개발을 하자니 역사가 사라지고, 보존하려니 낙후돼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일어난다. 말이 좋아 '개발과 보존의 어울림'이지 이 방식으로 한 지역을 활성화하려면 많은 사업비를 투자하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럼에도 '어울림'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개발은 언제나 가능하지만, 사라진 역사는 복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어떤 묘안을 가지고 공약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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