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에서 날카로운 지성을 보여준 작가 이인성. 이인성을 계승한 작가로 평가 받고 있는 이경희 화백의 구순기념 초대전이 20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맥향화랑에서 열린다.
이 화백은 대구 수채화의 역사와 전통을 이끌어온 주인공 중 한 사람이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이 화백은 1949년 제1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포항의 부두'로 특선을 받았다. 당시 국전 심사위원이 바로 이인성 화백이었다.
이경희 화백이 작업의 뿌리로 내세우는 것은 사생이다. 그는 현장에서 충분한 양의 사생을 한 뒤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이는 "수채화는 유화와 달리 즉흥적 감수성에서 붓끝이 유동되는 만큼 먼저 계획적 완성이 필요하다. 부분적으로 화면 구성에 미혹한 점, 쓸데 없는 선이 유동됨은 작가의 구상이 부족한 때문"이라는 이인성 화백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대구 수채화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이 화백은 맥향화랑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이 화백은 대구에 화랑 문화를 개척한 맥향화랑의 개관 기념전(1976년 4월 7~23일)을 장식한 작가다. 게다가 이 화백과 김성희 맥향화랑 대표는 사제지간이다. 1950년대 말 이 화백이 경북여고 미술 교사로 재직 중일 때 김 대표는 학생 신분으로 미술을 배웠다. 맥향화랑이 개관 38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이번 전시는 화랑과 작가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 김성희 대표는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미술에 대한 사랑은 지금까지 화랑 경영의 살아 있는 지표가 되고 있다. 40여 년의 세월을 돌아 구순을 기념하기 위해 다시 전시를 갖는 것 자체가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이 화백의 대표작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76년 간의 화력(畵歷)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포항의 부두' 등 1940년대 작품을 비롯해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전시되기 때문이다. 자연을 모티브로 한 이 화백의 작업은 1980년대 중반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 오페라, 발레 등의 새로운 소재가 추가되면서 음악과의 접목이 시도된 것. 또 화면의 생동감을 위해 보라색과 노란색, 적색과 청색 등의 보색 대비가 증가하고 추상화 제작 경향이 높아지는 등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습이 1980년대 활동 전반에 나타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발표되지 않았던 울릉도 기행 작품이 공개된다. 1986년 8월 울릉도 일주여행 당시 이 화백은 배안 또는 섬에서 울릉도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끊임없이 사생하며 40여 점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들 작품은 원숙기 시절, 현장감 넘치는 색채와 화려한 필치 그리고 날렵한 붓놀림의 묘미를 볼 수 있는 수작이다.
이 화백을 수식하는 말 중에는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화가" "상춘청년의 기질" 등이 있다. 그의 예술 세계를 두고 "명랑하고 쾌활한 분위기" "싱싱하고 젊음이 약동하는 탄력" "발랄하고 명쾌한 조형언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김영동 미술평론가는 "밝고 화려한 색채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대비, 치밀하면서도 대담한 구성, 게다가 철저한 사생에 바탕을 두면서 현실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이 화백 작품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 화백이 구순의 나이에도 창작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비결은 그가 간직한 순수한 예술혼 때문은 아닐까. 053)421-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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