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에게 3월은 신학기 수업 준비와 학급의 학생들 파악, 넘치는 공문 처리로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지나가는 시기이다. 여기에 올해 나에게는 한 가지 일이 더 늘었다. 바로 EBS 수능특강 교재에 대한 이의 제기에 일일이 답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재 해설 부분에서 소략하게 설명되어 있는 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해서 답변을 해 주면 수긍을 하고 더 이상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답변의 작은 표현들 하나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계속 시달리다 보면 생각 같아서는 알았으니까 제발 좀 떨어져라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전국 70만 명의 수험생들이 보는 수능 연계 교재의 공신력 문제가 있는지라 최대한 '꼬투리' 잡힐 표현을 피해 답변을 해야 하는데, 이게 여간 스트레스 받는 일이 아니다.
우리말에서 '꼬투리'는 콩류의 껍질을 가리키기도 하고, 담뱃잎에서 굵은 잎맥 부분을 가리키기도 한다.(일부 지역에서는 담배꽁초를 담배꼬투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표준어가 아니다.) 무엇을 가리키든 '꼬투리'는 중요한 것, 핵심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중요하지는 않지만 핵심적인 것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용적 표현인 '꼬투리 잡다'는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첫째는 '풀리지 않던 사건의 꼬투리를 드디어 잡았다'처럼 핵심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단서, 실마리'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꼬투리는 핵심을 향해 가는 과정에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는 전혀 없다. 두 번째는 '그는 결재 서류를 올릴 때마다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아 나를 괴롭혔다', '그들은 나의 출신 지역을 꼬투리 잡아 임용을 거부했다'처럼 핵심적인 내용과는 상관없이 남을 해코지하기 위한 '트집'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결재 서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류 안의 내용이지 줄 간격이나 글자 위치와 같은 것이 아니다. 사람을 임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능력이지 출신 지역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의미의) 꼬투리 잡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꼬투리와 알맹이를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비유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자동차에서 엔진이 망가진 경우에는 차를 더 이상 타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범퍼에 살짝 흠이 갔다고 해서 더 이상 타기 어려운 차라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꼬투리 잡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범퍼의 흠을 가지고 자동차를 버려야 한다고 끝까지 우긴다. 주변에서 보면 대화를 하면 할수록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부분은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다. 국어 공부를 하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알맹이와 꼬투리를 구분할 줄 알고, 꼬투리에 집착해 알맹이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민송기 능인고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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