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 객주문학관. 준공을 1시간 앞둔 이곳에서 김주영(75) 작가가 문학관을 누비며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작품 '객주'를 주제로 한 문학관이기에 눈길은 꼼꼼했고, 손길은 세심했다.
김 작가는 22일 서울에서 이곳 작가실로 이사를 했다. 작가실은 그의 집필도구와 소설의 재료가 되는 역사책으로 가득했다. 무려 5천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김 작가는 가족들이 있는 서울에서 완전히 떠나지는 못하지만 한 달에 열흘 정도는 이곳 작가실에서 머물며 글을 쓸 작정이다.
"고향은 제게 운명적인 인연인 것 같아요." 귀소본능일까. 그는 고향인 청송으로 세 번째 돌아온다고 했다. "진보에서 태어나 자랐고,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대구로 갔다가 영농조합에 직장을 얻으면서 청송에 왔습니다. 1971년 등단하고 대구로 옮겼다가 서울로 갔고,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돌아왔네요. 여생을 고향에서 보낸다고 생각하니 무척 감격스럽습니다."
김 작가는 "객주문학관에는 특별함이 있다"고 했다. 기존의 문학관과 달리 문학과 역사가 함께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국에 있는 문학관 50여 곳 중 절반 이상을 둘러봤다고 했다.
"대부분 작가의 문학 활동을 중심으로 꾸몄거든요. 하지만 객주문학관은 조선 후기 상인들의 활동을 문학관의 큰 주제로 삼고 그 안에 역사와 교육, 체험과 실습 등 함께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학생들은 문학과 역사를 배울 수 있고 역사소설을 준비하는 신인 작가들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죠."
청송에 돌아온 그가 가장 놀란 것은 확 달라진 청송의 문화 환경이었다. "제가 어릴 적에는 100리 밖을 나가야 기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워낙 오지라 문화 혜택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죠. 지금 와보니 완전히 달라졌더군요. 객주문학관을 비롯해 야송미술관과 이야기 마을, 청송백자전시관, 청송심수관도예전시관도 있어요. 의욕과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지난해 김 작가는 소설 '객주'의 마지막 권인 10권을 완결했다. 9권을 쓴 지 30년 만이다. "저는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고, 교육을 넉넉히 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객주 한 권을 쓰려면 그만큼 역사 공부를 광범위하고 세밀하게 해야 했어요. 그 노력이 정말 고통스러웠죠. 9권에서 등장인물을 어디론가 사라지게 한 것도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못 쓰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었어요."
그가 다시 펜을 잡은 건 울진에서 보부상길이 발견되고 비석과 숙소 등 역사자료가 나왔다는 소식 덕분이었다. "작가라는 직업이 별수 없더군요. 마지막 체력을 다해 완결판을 집필했고, 제 근력도 끝이 났어요. 이젠 객주처럼 장편소설은 못 쓸 것 같아요."
그래도 그는 앞으로 1년간 청송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쓸 작정이다. 소설 준비를 위해 많은 장소를 둘러보고 사람들도 충분히 만나볼 생각이라 했다.
"요즘 글 잘 쓰는 후배들이 늘어나 흐뭇해요. 선배랍시고 이것저것 말하는 것보다 인간적으로 격려해 주고 싶어요. 후배들이 객주문학관을 찾는다면 항상 지갑을 두둑이 하고 술과 밥을 책임질 각오를 하고 있어요." 노(老) 작가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한편 25일 준공한 객주문학관은 폐교된 진보제일고등학교를 개보수해 완공됐다. 청송군은 73억원을 투입해 소설 '객주'를 주제로 한 전시'체험시설을 조성했고 작가실과 기획전시실, 체험숙박실, 카페 등을 갖췄다.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