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필1] 단오절

이영계(대구 달서구 야외음악당로)

가난하면서도 옹기종기 정을 나누며 조용히 살아가는 내 고향 광현에도 매년 단오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날은 마을 청년들이 벼 짚단을 모아서 그네 줄을 엮느라고 분주하며, 부녀들은 곱게 머리 빗고 몸단장하며 이웃집에 모여들고, 동네 꼬마들은 그네 뛰는 모습 구경하려고 떠들썩하게 모여든다. 내 작은집 사촌 형수님도 갓 시집 온 고운 새악시로 곱게 단장을 하니 더없이 화사하고 예쁘게 보였다. 내 사촌 형님은 그 모습을 보고 퍽 기분이 좋으신지 싱글벙글 웃음을 잃지 않으신다.

이제 그네 줄이 다 완성이 되어 작은 집 뒷동산 참나무에 그네 줄을 매달면 그 위치가 안성맞춤이다. 누가 더 멀리 올라가느냐고 서로 교대로 그네를 탄다. 내 사촌 형님은 너무나도 그네를 잘 타신다.

갓 시집 온 어여쁜 각시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멀리 높게 올라가곤 한다. 내 사촌 형수님은 대견하다는 듯 올려보며 미소 짓는 모습 정말 평화롭고 순박한 사랑의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아~, 그런데 이 어인 일인가. 그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6'25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내 사촌 형님도 이웃 형님과 함께 소집영장을 받고 군에 입대했다. 내 고향산천을 떠나갈 때 사촌 형님의 마음은 어떠했으랴. 부모형제, 갓 데려온 고운 새악시를 뒤에 두고 떠나가는 그 걸음걸음 얼마나 안타까웠으랴.

"가면 곧 편지 할 거야. 부모님 잘 모시고 기다리고 있어." 각시에게 몇 마디 수줍은 듯 속삭이고는 훌훌히 떠나는 뒷모습에 내 사촌 형수님은 눈물로 전송하며 마음은 곧 뒤따라 함께 가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 모두 나와 손을 흔들면서 전송했다.

그로부터 세월은 흘러 흘러 내 고향까지도 적군의 발길은 스쳐갔으며 고향 사람들도 풍비박산 뿔뿔이 흩어져갔다. 그런 가운데도 내 사촌 형수님도 고독의 순간순간을 참고 견디며 인내하고 있었다. 그때 가신 낭군님의 군사소식 노래를 부르며 소식이 오늘 올까, 내일 올까 손꼽아 기다리며 집 앞 감나무 위 까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수없는 기다렸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전쟁은 끝나고 휴전이 되었다. 고향 산천은 그래도 변함이 없으며 울려 퍼지던 총성도 멎고 뿔뿔이 흩어졌던 마을 사람들도 모두 돌아왔는데 보이지 않는 사람은 몇몇이던가. 평화롭던 내 고향에도 전쟁이 지나간 폐허 위에 슬픔과 비탄, 허탈만이 남아서 인간 고뇌의 쓴맛을 뼈저리게 맛보게 한 것이다.

내 사촌 형수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낭군님의 소식은 없고 한숨 섞인 나날들을 울음으로 지새야 하는 비운의 여인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갓 시집 와서 단꿈도 채 깨기 전에 홀연히 떠나가신 님을 그리며 그 수많은 나날을 한숨과 눈물로 점철하신 내 사촌 형수님의 모습을 가만히 생각해본다.

마음씨 곱고 미인이며 노래를 참 잘하셨다. 이제는 우리 집안에서 떨어져 간 영원한 남이 되어버렸지만 그 마음씨 곱고 화사하던 형수님의 미소가 그리우며, 해마다 단오날이 되면 흘러간 그 옛날 내 작은 집 뒷동산 참나무 그네 줄이 생각난다. 사촌 형님이 신나게 그네 타시던 그 모습을 어여쁜 얼굴에 웃음을 담고 올려보던 그 형수님의 모습. 그 어느 것도 이제는 영원한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전쟁이 앗아간 슬픈 사연들은 천차만별이겠지만 내 사촌 형님과 형수님의 사연도 6'25전쟁이 앗아간 사랑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내 사촌 형님은 장하게 나라에 몸을 바쳤습니다만 세월은 아무 말 없이 흘러만 왔다. 오래전에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그 사촌 형수님은 재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산다는 소식이다. 나는 정말 다행한 일로 생각한다.

여자는 한 번 결혼하면 평생 일부종사해야 한다는 옛날의 관습에 얽매여 평생을 고독 속에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사촌 형님은 어찌할 수 없더라도 남은 한 사람이라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축원해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집안에 시집와서 쓰라린 고통만을 맛보고 가신 그 형수님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나는 기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형수님도 해마다 찾아오는 단오절이면 잊지 않을 것이다.

내 고향 작은 집 뒷동산 참나무 그네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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