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에 가면 왠지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지만 정이 있기 때문이다. 옥신각신 흥정을 하면서도 정이 넘친다. 덤으로 한 줌 더 얹어주는 재미는 또 어떻고. 이처럼 전통시장에는 진한 사람 냄새가 배어 있고 따스한 정이 스며 있다. 서문시장 2지구 2층에 가면 40년째 진한 커피 향기와 함께 정을 배달하는 '시장표 커피 바리스타' 박희선(66) 여사를 만날 수 있다.
◆'맞춤커피'와 '박 여사표 커피'
박 여사는 커피와 설탕, 프림이 배합된 커피믹스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주문에 따라 커피를 만들지만 특별한 주문이 없으면 일명 '맞춤커피'를 만들어 배달한다. "'그냥 보통으로 주세요'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안 마십니다. 커피는 기호음식이잖아요. 단골 고객의 입맛을 다년간 연구한 끝에 만든 '맞춤커피'예요. 그 사람 입맛에 맞게 타 주니 다들 좋아하세요." 그래서 수많은 단골 고객의 입맛을 흔히 꿰고 있다. 처음 주문하는 고객에게는 황금비율의 커피를 내놓는다. 일명 '박 여사표 커피'다. 커피 1스푼과 설탕 1, 프림 1.5 비율의 커피다. "다방커피와 비율이 조금 달라요. 다들 입맛에 딱 맞다며 만족해하는 것 같아요."
커피 장사는 역설적이게도 1997년 IMF 때가 잘됐다고 한다. IMF가 박 여사에겐 기회가 된 셈.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장사를 시작한 사람이 많았는데, 전국에서 도매 기능을 하는 서문시장에 물건을 떼러 오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들이 저의 고객이 된 거죠. 하루에 150잔, 많이 팔 때는 200잔 이상도 팔았어요. 정말 열심히 했고 돈도 벌었어요. 덕분에 자리도 잡았고요."
◆커피 전문점 개점
호황도 잠시. 경기침체와 함께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2지구에만 몇 개의 커피 전문점이 개점했다. "우선 주문이 많이 줄었어요. 그리고 옛날에는 맞춤커피나 황금비율의 커피를 배달하면 '맛있다'며 좋아했는데, 요즘은 블랙커피를 주문하는 사람, 설탕만 넣어달라는 사람 등 주문 내용이 다양합니다."
주문 감소와 함께 수입도 줄었다. 한 잔 값은 500원. "요즘은 100잔 팔기도 힘들어요. 그러나 단골도 있고 나만의 노하우도 있으니까요."
◆남편 병수발 위해 커피 장사
박 여사가 커피 장사를 시작한 것은 20대 후반, 새색시 때였다. "1975년인가 76년쯤 결혼 3년 만에 남편이 병에 걸렸어요. 생활비와 병원비를 대기 위해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어요."
밑천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고민 끝에 시장에서 커피를 팔기로 했다. "커피와 설탕, 프림, 커피잔, 그리고 뜨거운 물이 든 보온병을 담은 보따리를 들고 장사를 시작했다. 자리가 없어 지구마다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어요. 그땐 많이 힘들었어요."
당시 커피 한 잔 값은 40원. "50~100잔 팔기가 힘들었어요. 하지만 내가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그 돈으로 남편 병원비 대며 생활했어요. 벌써 40년 전의 이야기가 됐네요. 허허."
◆장사 계속할 터
박 여사는 커피 장사를 계속 할 생각이다. "남편의 병원비도 대야 하고. 아들 장가도 보내야 하고. 아직은 내가 우리 집 기둥이에요."
커피 전문점과의 경쟁에도 자신 있다. "40년 동안 축적된 노하우가 어디 가겠어요. 그리고 조금 적게 팔면 어때요."
인터뷰하는 내내 커피 주문 전화가 걸려온다. "여기 1층 ○○점인데요. 원두커피 두 잔, 큰 컵으로요." 053)252-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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