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예비군과 정치인

정치인과 거지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입으로 먹고산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정년퇴직이 없다.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늘 나타나는 습성이 있다. 구역 관리가 확실하다. 되고 나면 쉽게 버리기 싫은 직업이다. 실정법으로 통제가 어려운 골치 아픈 존재이다.'

예비군과 국회의원도 닮은 점이 있다. 여기서 예비군은 20~30년 전의 예비군이 더 적절할 듯하다. 평소 멀쩡하던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혀 놓으면 180도 달라지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인사들이 금배지를 달고 여의도에만 입성하면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되듯이….

훈련 가는 쌍팔년도 예비군의 전형은 이렇다. 앞섶을 풀어헤친 야상 점퍼 차림에 덥수룩한 머리 위로 개구리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쓰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껌을 쩍쩍 씹으며 버스정류장에 짝다리로 서 있는 모습. 어디선가 자주 본듯한 예비군의 자태이다. 훈련 중에도 그렇다. 총을 땅에 끌고 게걸음을 걸으며, 실내교육 땐 아예 삐딱하게 앉아 참을 청하기 일쑤였다. 술이라도 한 잔 걸치고 나면 그 추태가 더 가관이다. 당나라 군대가 따로 없었다. 그들이 정녕 평범한 회사원이요 충실한 가장이었던가.

황당하고 기발한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이그 노벨상 수상으로 화제가 된 사회심리학자 로랑 베그가 쓴 책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는 '도덕적 착각'에 빠져 있는 인간의 심리를 파헤친 명저이다. 저자는 집단 속에서는 자의식이 약화되고 평소의 개인적 신념과 모순되는 행동을 저지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고 설파한다. 이러한 현상은 탈 개체성 즉 개인적 정체성의 약화와 집단이 가져오는 익명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예비군복'이라는 집단 가면의 힘과 '국회의원'이란 집단 정체성의 괴력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조폭처럼 패거리를 지어 난투극을 벌이는가 하면, 시정잡배 같은 막말도 쏟아낼 줄 아는 최고 엘리트 집단. 그들은 거짓말도 잘한다.

북한 무인기를 두고 헛소리를 늘어놓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청래 의원과 서상기 대구시장 예비후보 지지 선언을 한 주성영 전 국회의원의 이율배반적인 행보에서 새삼 '선량'들의 탈 개체성을 확인한다. 세월호 참사 현장을 찾았다가 원성만 사고 되돌아가는 정치인들을 보며, 그들의 예비군복이 측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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