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영웅과 졸장부 사이

2011년 1월 15일 새벽 '삼호 주얼리호'는 인도와 오만 사이 해역을 지나다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됐다. 위치는 인도양 북부 공해상. 해적들의 근거지인 소말리아까지는 700마일 정도 거리였다. 이 배에는 석해균 선장을 비롯해 21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석 선장은 기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해적들이 방심한 틈을 타 청해부대에 피랍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청해부대는 2천㎞나 떨어져 있었다. 청해부대의 작전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해적 기지까지 도착 시각을 최대한 늘려야 했다. 해적의 감시 속에 지그재그 운항, 저속 운항, 엔진에 물 넣기 등 속도를 늦추기 위한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마침내 청해부대가 따라잡아 작전에 돌입했다. 이른바 '아덴만 여명 작전'. 작전 결과 13명의 해적 중 8명은 사살하고 5명은 생포했다. 작전 중 석 선장 역시 심각한 총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배를 포기하지 않았다. 해적들의 총칼에 굴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준 그가 부상에서 회복하자 국민들은 아덴만의 영웅이라 불렀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에 심각한 사고가 터졌다. 이 배에는 이준석 선장을 비롯해 475명이 타고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고교생 325명도 함께였다. 오전 8시 58분 구조 요청을 한 이 배는 침몰하기 시작했다. 이 배엔 46개의 구명보트가 실려 있었다. 승객 전원을 구조하기에 충분한 정도였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내려진 구명보트에 탄 사람은 선장이었다. 이 보트는 이번에 사용된 유일한 구명보트였다. 나머지 구명보트는 사용할 수 있었지만 사용법을 몰라 사용되지 않았는지, 처음부터 작동 불능이었는지는 알 길 없다. 어쨌건 46개 중 사용된 유일한 보트에 선장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만 도드라져 보인다.

해난사고의 전설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선장은 에드워드 스미스였다. 그는 침몰 당시 끝까지 승객 탈출을 돕고 자신은 배와 운명을 함께했다. 그의 고향 리치필드엔 그의 영웅적 행동을 그린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거기에 쓰인 글은 'Be British(영국인다워라)'다. 세월호 사고 소식이 연일 외신 톱뉴스로 장식되고 있다. 영국인은 영웅이 됐고 한국인은 졸장부가 됐다. 언제쯤 '한국인답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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