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미국 공사관 서기였던 샤이에 롱이 아이들을 촬영한 사진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사진 속의 아이들이 잔혹하게 살해되어 시신이 훼손된 채로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고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서양인들이 갓난아이들을 납치해 죽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눈알을 빼서 사진도 만들고 약도 만든다고 했다.
프랑스 공사관 소속 조선인 요리사도 거들었다. 서양인들은 식탁에서 핏기가 덜 가신 어린 아이의 인육을 먹고, 술 대신 핏물을 마신다고 했다. 덜 익힌 스테이크와 포도주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쯤 되니 선교사들이 고아원을 짓고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는 것도 '살찌워서 잡아먹으려는 것'임이 분명해졌다. 양귀(洋鬼)들을 쫓아낸다며 몽둥이를 들고 나선 무리들로 말미암아 서울은 살기마저 감돌았다. 신분에 위험을 느낀 그들은 결국 제물포에 정박 중인 군함에서 병사들을 불러들이고 나서야 사태를 모면할 수 있었다. 1888년에 발생한 '영아소동'(Baby Riots)의 전말이다.
무지의 탓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폴레옹을 앞세워 이집트를 침공했던 서양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몇백 년 전 십자군 전쟁에서 만났던 이슬람은 이미 파악하기 어려운 거대한 괴물로 남아있던 터였다. 그들은 이슬람이라고 하는 이 두려운 존재에 대해 왜곡과 폄하를 일삼기 시작했다. 술과 돼지고기가 금기로 되어 있는 이슬람은 예언자 무함마드조차 술에 취해 돼지고기를 먹고 죽은 야만적 집단이라는 식으로. 그리고 드디어는 그들을 '악의 축'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옛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를 배경으로 그린 앙리 르노의 '즉결처분'이라는 작품에는 그 두려움이 잘 나타나있다. 무표정한 갈색 피부의 무어인은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변모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칼에 묻은 피를 자신의 옷으로 닦으며 서 있고, 계단에는 참수형을 당한 사내가 자신의 머리통을 저만치 굴러 떨어뜨린 채 쓰러져 있다. 재판도 없이 즉결처분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동방에서는 절대 권력에 제대로 순응하지 않으면 이처럼 늘 무자비하게 처단된다는 상상의 결과였다. 어쩌면 이는 19세기 유럽이 겪은 스스로의 잔인성 혹은 가학적 욕망을 날것 그대로 투사한 장면일 수도 있다.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은 21세기 한국 땅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히잡을 두른 여인이나 수염을 기른 사내들에게서 느끼는 소위 '이슬람 공포'(Islamophobia)가 그것이다. 호전적인 무슬림들은 테러와 살인을 일삼고, 여전히 일부다처제의 악습 속에서 여성학대를 일상으로 여기고 명예살인마저 저지르는 반문명적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숫자가 한국 땅에서 이제 곧 100만 명에 육박하니,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주장한다.
과거에 우리가 경험했던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의 대가가 얼마나 비쌌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근대화를 이룰 수 있는 자율적 기회를 박탈당한 채 제국주의자들의 강압에 맡겨야 했다. 너무나 많은 치욕을 감내해야 했고,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그럼에도 이제는 이슬람과의 만남에 인종차별이나 적개심을 표출해내고 있다. 특수한 경험을 일반화시켜 왜곡된 고정관념으로 만들어 낸 결과다. 그것은 인간 문명을 파괴적이고 피폐케 하는 일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16억 무슬림인구의 찬란한 문화적 전통을 우리의 적(敵)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면, 그리고 방어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적극적인 수용의 태도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들을 우리의 동반자로 삼을 수도 있다. 상극의 관계를 상생의 관계로 바꾸는 일은 우리가 맞고 있는 다문화시대를 보다 높은 차원의 문명으로 진입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현재 대구경북지역의 대학에만 무슬림 유학생들이 자그마치 수백 명에 이른다는데….
계명대학교 한국문화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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