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로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며 '깊은 슬픔'에 빠진 실종자 가족들이 사생활 노출로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듣고 옷가지 하나 챙길 겨를 없이 황급히 사고 현장으로 달려왔으나 지루한 기다림의 공간인 진도체육관은 '집단 수용소' 같다.
참사 발생 8일째인 23일. 실종자 가족이 체육관 바닥에 자리를 깔고 지루한 기다림과 싸우는 동안 그 모습은 고스란히 언론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다.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피해자 가족들의 체육관 집단 수용은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정적 감정을 추스르려면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는 확 트인 공간보다는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가족들의 사생활도 지켜줘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22일 오후 8시쯤 체육관 상단 관중석. 아래를 내려다보니 깔개 위에서 슬픔을 다스리는 실종자 가족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담요를 덮어쓰고 누워있는 모습, 헝클어진 머리, 링거를 맞으며 짓는 고통스러운 표정, 쪼그려 앉아 울거나 비탄에 빠진 모습 등이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고스란히 외부인에게 비쳐졌다. 가족끼리 나누는 이야기는 옆 가족들에게 걸러지지 않은 채 곧바로 전해졌다.
이렇듯 실종자 가족들의 사생활이라고는 없다. 그러다 보니 실종자 가족들과 근접 취재를 하려는 기자 간의 마찰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정성원 계명대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감정은 전이된다. 슬퍼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같은 처지인 사람들은 불안감과 슬픔을 느끼게 되고 단단히 마음먹은 다짐과 희망이 무너질 수 있다"며 "대형 사고 때마다 피해자 가족에게 일일이 숙소를 제공할 수 없겠지만, 개인의 공간이 있으면 타인의 감정에서 독립돼 스스로 감정을 해소할 여지가 생긴다. 칸막이를 설치해 각자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출된 공간은 체력을 추스를 겨를을 주지 못한다. 자원봉사자 박모(30) 씨는 "밤에도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데다, 들락날락거리는 사람들의 발소리 등으로 잠깐도 쉬지를 못한다"고 했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밤이면 얼굴에 수건을 덮거나 모자로 얼굴을 가린 가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현장 응급의료소 의료진들은 "가뜩이나 못 먹는데 잠까지 못 자면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건강에 좋지 않다"고 했다.
이런 지적에 따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사고 1주일 만인 22일, 진도군청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체육관에서 체류하고 있는 희생자 가족들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줄여 주고자 칸막이를 설치하는 방안을 가족 측과 협의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 관계자는 "가족들의 사생활과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칸막이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며 "언론사에 슬픔과 비탄에 잠겨 있는 희생자 가족들의 모습을 촬영해 여과 없이 보도하는 것을 자제해 줄 것을 협조 요청키로 했다"고 밝혔다.
진도에서 서광호 기자 kozmo@msnet.co.kr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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