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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살자" 승객 버린 선장·기관사 '닮은 꼴 人災'

세월호-대구지하철 참사 '5大 공통점'

사진 제공=(해양경찰청)
사진 제공=(해양경찰청)
세월호 침몰 참사와 11년 전 대구지하철 참사는 여러모로 닮았다. 인재가 몰고 온 두 참사는 초기 대응만 잘했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침몰중인 세월호와(해양경찰청 제공) 불타버린 전동차(매일신문 DB)
세월호 침몰 참사와 11년 전 대구지하철 참사는 여러모로 닮았다. 인재가 몰고 온 두 참사는 초기 대응만 잘했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침몰중인 세월호와(해양경찰청 제공) 불타버린 전동차(매일신문 DB)

세월호 침몰 참사와 11년 전인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는 여러모로 닮았다. 인재가 몰고 온 두 대형 참사는 초기 대응만 잘했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대기하라"는 잘못된 방송, 승객의 생명줄을 쥐고 있던 선장과 기관사의 초기 '도주'는 너무나 큰 아픔을 남겼다. 두 대형사고의 5대 공통점을 짚어봤다.

◆배 버린 선장과 먼저 탈출 기관사

두 사건이 대형참사로 이어진 배경에는 '나만 살겠다'고 도망친 선장과 기관사가 있었다. 세월호 선장은 해상교통관제센터(VTS)로부터 탈출 준비 지시를 받은 뒤에도 승객들을 대피시키기는커녕 가장 먼저 배를 버리고 달아났다. 배가 침몰하는데도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선내에 흘렀고, 그 사이 선장과 항해사 등은 탈출했다. 차분하게 안내방송에 따랐던 승객들은 구조의 손길조차 받지 못한 채 차디찬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외신들은 그를 '세월호의 악마'라고 불렀다.

11년 전 대구지하철 참사 때도 그랬다. 당시 방화로 불이 났던 1079호 전동차 기관사는 승객들에게 "안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을 해 초기 탈출 기회를 앗았다. 반대편 1080호 전동차 기관사는 전동차 안으로 연기가 들어오자 출입문을 닫은 후 마스터 키까지 뽑고 탈출했다. 이 때문에 승객들은 원인도 모른 채 메케한 연기를 마시며 숨져갔다.

◆허둥댄 초기 대응 피해 눈덩이

초기 대응도 서툴렀다. 그 바람에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세월호의 사고 신고는 엉뚱하게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로 향했다. 오전 8시 55분 사고 신고가 이곳으로 전해지면서 정작 사고수역 담당인 진도 VTS와 세월호 간의 교신은 오전 9시 7분에야 이뤄졌다. 그 침묵의 12분은 엄청난 피해의 단초가 됐다. 놓쳐버린 '골든 타임'은 아까운 목숨을 바다 아래로 가라앉게 했다. 진도 VTS의 대응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월호가 담당 수역에 들어온 건 오전 7시 7분. 그러나 진도 VTS는 이를 모르고 있었다. 레이더만 제대로 관찰했다면 이상징후를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처럼 억울한 죽음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구지하철 참사 역시 종합사령실의 부실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 당시 종합사령실은 오전 9시 55분 화재 발생 사실을 알았지만 승객들에게 대피 방송을 하지 않았다. 사령실은 오전 10시 8분 기관사들에게 무선연락망을 통해 승객 대피를 지시했다.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13분의 '골든 타임'을 의미 없이 보내버린 것이다. 사령실은 대구시 교통국과 119종합사령실에 화재 발생 사실을 알리도록 한 비상대응 수칙을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이 먼저 신고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유언비어 난무 유가족 고통 가중

피해자 가족들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내뱉은 유언비어에 또 다른 고통과 싸워야 했다.

세월호 침몰 후인 18일 자신을 민간잠수부라고 소개한 홍모 씨는 한 종합편성채널에 나와 "정부가 민간잠수부의 작업을 막고 있고, 민간잠수부가 배 안에 있는 생존자와 대화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희망을 안긴 이 인터뷰는 거짓으로 드러났고, 가족들과 두 손 모아 기적을 바랐던 국민은 가슴을 쳐야 했다.

각종 유언비어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급속하게 퍼졌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미국 잠수함과의 충돌이다' '국정원이 사건을 덮고자 벌인 자작극이다' 등의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혼란을 부추겼다.

지하철 참사 당시에도 한 네티즌이 부상자가 혈액을 구하지 못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게시물을 올리고 경북대병원 전화번호를 덧붙여 참사를 지켜보던 수많은 국민이 병원에 문의전화를 하는 등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방화셔터가 잠겨 수많은 죽음을 몰고 왔다는 일명 '통곡의 벽' 소문도 확산됐다. 하지만 조사 결과 통곡의 벽 쪽으로는 탈출이 시도되지 않았고, 사망자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와 대구시가 조직적으로 시신을 유기했다는 소문도 이곳저곳으로 퍼졌다.

◆어설픈 오류 반복한 컨트롤 타워

대구지하철 참사 때의 어설픈 사고 대응은 11년이 지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당시 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는 화재현장을 보존하지 않고 물청소해 시신 확인의 어려움을 불러일으켰다. 대구시장은 취임한 지 불과 7개월 만에 닥친 대형참사에 허둥댔다. 시는 사망자 명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초기 미확인 시신이 70여 구라고 발표했던 시는 다시 170여 명, 200여 명, 나중에는 300여 명이라고 말 바꾸기를 계속했다.

박근혜정부도 출범 1년 만에 닥친 대형참사에 허둥대긴 마찬가지였다. 탑승자 수를 파악하지 못했고, 구조자 수를 중복해 더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저질렀다. 초기 386명이던 구조인원은 164명으로 줄었고 다시 175명으로, 나중에 다시 한 번 174명으로 정정됐다. 사고 초기 경기도교육청은 '학생 전원 구조'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식을 학부모에게 알렸지만 터무니없는 오보였다. 사고 직후 실종자 가족들이 수색현장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CCTV 모니터를 요청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현장에 방문해 설치 약속을 하기 전까지 요청이 묵살돼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다는 비난도 들끓었다.

◆'약발' 안 먹히는 사후약방문

대형사고 뒤 정부는 항상 분주했다. 더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며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약발'은 먹히지 않았다.

지하철 참사 당시 경찰, 소방관, 공무원 등의 통신체계가 달라 인명구조를 제때 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자 정부는 재난 대응기관을 연결하는 '국가재난안전무선통신망'(국가재난통신망) 구축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는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실행되지 않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며 안전 대한민국을 강조했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 앞에서 안전은 없었다.

침몰 사고가 발생하자 대구지하철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해경, 경찰, 해군, 안전행정부 등 재난 대응기관 간의 '불통'이 다시 인명구조의 발목을 잡았다. 또다시 국가재난통신망 구축이 재난사고의 대책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11년 전과 마찬가지로 흐지부지될지 제대로 된 재난시스템이 갖춰질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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