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는 A가 오른손과 팔을 조금 다쳤다. "왼손이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A는 왼손잡이였다. 나는 그 말에 마음이 놓이기는커녕 무거운 돌이 날아와 앉는 기분이었다.
17년 동안 함께 일해 왔던 A. 나는 이 오랜 시간 동안 A가 살아온 여러 모습을 지켜보았다. 입사하던 때 A를 기억한다. 홍콩 인형처럼 양 볼이 발그레한 모습으로 편집자의 깐깐한 요구를 꼭꼭 씹어 듣던 모습,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작업의 완성도에 몰입하던 모습, 야근과 밤샘을 밥 먹듯 하던 열악한(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작업 환경 속에서도 첫 기차와 마지막 기차로 캘리그래피 수업을 다니던 모습 등.
그러던 A가 17년이 흘러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었다, 뭐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다친 A의 손을 들여다보다가 새삼스럽게 디자이너의 손을 보았다.
그들의 손은 연필을 대신하고 자를, 물감을 대신한다. 그것들로 커뮤니케이션에 관여하고, 더러는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자신이 만든 심벌을 9'11 이후 재해석한 포스터 한 장으로 첨예한 미국사회의 진실을 보여주었던 밀턴 글레이저, 많은 논란 속에서도 분명한 노선으로 활자는 곧 이미지임을 확인시켜준 얀 치홀트, 로고 디자인에서 아이덴티티 프로그램, 건축, 그래픽, 제품 등 다양한 디자인 분야를 넘나들던 스타 디자이너 마시모 비넬리, 그리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가졌던 손들. 지난 세기 동안 그들의 손이 만들어낸 삶의 궤적들을 따라 걸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의 손의 패턴을 만들고 디자이너로서의 철학을 심어가고 있다.
최근에 새로운 디자이너를 만나기 위해 두 달에 걸쳐 지원서를 받았다. 두 달이라는 틈이 너무 컸던지 몇 사람은 다른 직장을 찾아가거나 지원을 취소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취업이 절박한 사람들에겐 가혹한 지원 기간이었겠지만, 적어도 입사하려는 회사를 파악하고 그 회사에 맞게 준비하려면 그 정도의 시간은 오히려 짧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많은 예비 디자이너를 만날 수 있었다. 면접 당일에 마주한 눈빛들은 모두 반짝거렸다. 이미 날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야근과 밤샘을 반복해온 내 눈빛과는 너무 달랐다. 몇 팀으로 나누어 오픈 면접을 보았다. 왜 디자이너가 되려고 하나,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나, 현재 읽고 있는 책과 관심 대상, 개인적인 삶의 계획 등… 면접이라기보다 주제 토론을 하는 분위기 안에서 저마다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결과에 관계없이 어느 곳에서든 디자이너로 살게 된다면 건강한 디자인을 해보자는 데 의견을 함께한 시간이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었던 B는 지난주 첫 출근을 했다. B는 지금 나의 지척에서 씨름하고 있다.
최종 면접 때 나는 넌지시 물었다.
"디자이너들의 피할 수 없는 밤샘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B는 고무적으로 대답했다.
"아, 디자이너에게는 당연히… 각오가 된…."
그 대답으로 A의 다친 손을 덜 아프게 할 순 없다. 내 가슴에 놓인 무거운 돌이 걷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제 나와 A의 길을 걷게 될 B에게 말해주고 싶다.
모든 직업군이 그렇겠지만 특히 디자이너에게는 지름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 둘러가는 길에서 야근과 밤샘의 달인이 되고, 깐깐한 편집자와 준엄한 클라이언트의 바람에 천천히 부응하게 된다는 것. 그러는 사이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삶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고, 누구의 개입도 없이 멈추지 않는 공부를 하게 된다는 것. 그럼으로써 나의 손에 닿는 세상을 향기롭게 숙성시킨다는 것.
편집출판디자인회사 홍익포럼 대표 gratia-de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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