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 무너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외면한 채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적지 않고, 교사는 그 아이들과 옥신각신하기보다 깨어 있는 학생들이라도 챙기기 위해 묵묵히 강의를 이어간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공교육, 즉 학교를 신뢰한다는 말을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교실이 붕괴하고 있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학교 수업이 학생, 학부모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을 갖는다. 사회는 물론 학생들도 빠르게 변하는데 획일화한 교육과정, 주입식 수업 등 학교의 모습은 여전히 구태의연하다.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업이 바뀌어야 학교가 바뀐다'는 생각으로 수업 변화를 위해 뛰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이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수업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는 사례를 살펴봤다.
◆'교실을 뒤집다', 거꾸로 교실
"어이, '급류'는 '금류'로 발음하는 거잖아."
"아니, '금뉴'가 맞지 않아?"
"글쎄, 선생님! 어떤 게 맞아요?"
"이 경우엔 '금뉴'가 맞지. 그게 어떤 음운 현상이라고? 그래. '자음동화 현상'이야."
지난달 29일 찾은 부산 부산진구 동평중학교 교실. 국어를 담당하는 김수애 교사가 3학년 5반 학생 33명을 데리고 음운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데 수업 풍경이 여느 곳과 달랐다. 김 교사는 장황하게 강의를 이어가는 대신 음운 관련 문제를 담은 활동지를 나눠줬고 4명씩 조를 이뤄 앉은 학생들은 문제를 풀었다. 김 교사가 만들어 둔 10여 분 분량의 동영상으로 수업 내용을 미리 익힌 뒤 교실로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를 다 푼 학생들이 서로 답을 비교해 보느라 교실 곳곳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그러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손을 번쩍 들고 김 교사를 찾았다. 김 교사는 수업 시간 내내 학생들 사이를 누비며 질문을 주고받았다.
교실 한쪽에선 3명씩 짝을 지어 앉은 학생들이 태블릿 PC를 보거나 교재를 훑어보고 있었다. 이들은 김 교사가 만든 강의 동영상을 챙겨보지 못한 탓에 태블릿 PC나 교재로 이날 수업 내용을 살펴본 뒤 대부분 학생이 풀던 활동지를 받아들었다.
구태의연하다는 한국 교실에도 체험, 토론 형식의 수업이 선보이는 등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 하지만 다수 교실에서 활력을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아직 '산들바람'에 불과한 셈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 부산 동평중에서 시작된 '거꾸로 교실'이 학교 수업에 활기를 찾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며 주목받고 있다.
'거꾸로 교실'은 2007년 미국 콜로라도 주의 교사 조나단 버그만과 아론 샘즈가 시도한 수업 방식으로 영어로는 '플립트 클래스룸'(Flipped Classroom)이라고 표현한다. '뒤집다'는 의미의 '플립드'(flipped)와 교실을 일컫는 '클래스룸'(classroom)의 합성어다. 기존의 교실 수업은 교사들이 만든 10분 안팎의 동영상 강의로 대신해 학생들이 미리 보고 오도록 하고, 수업 때는 학생들이 주체가 돼 토론이나 과제 수행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미국에서 학교를 일깨웠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는 수업 방식이다.
동평중 학생들은 이 같은 수업 방식에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날 국어 수업을 들은 한 학생은 "아는 건 줄 알았는데 친구에게 이야기해주다 보니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걸 느꼈다"며 "한 개라도 확실하게 알고 넘어갈 수 있어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루하지 않아 좋다" "여러 명이 어울려 활동하는 식으로 수업을 하니까 아이들끼리 더 친해진 것 같다"는 반응도 많았다.
동평중 교사들도 이 수업에 긍정적이다. 동영상과 나눠 줄 활동지를 만들어야 하는 등 부담이 늘었지만 익숙해지면 충분히 해낼 만하다고 했다. 더구나 수업 시간에 활기가 돌게 된 점을 생각하면 더욱 신이 난다.
김수애 교사는 "예전에 자는 아이를 깨우다 수업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면 내가 무능한 교사가 아닌지 자괴감이 들곤 했다"며 "새 수업 방식 도입 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수시로 나를 찾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뿐 아니라 나도 교사로서 자존감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이날 동평중의 수업을 참관한 대구 달서고 교사들도 '거꾸로 교실' 수업 방식에 감탄했다. 달서고엔 중학교 시절 성적이 하위권인 학생이 상당수여서 수업 때 자는 학생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동평중의 활기찬 수업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달서고 김순천 교감은 "상위권 학생에 초점을 맞춘 강의식 수업으론 다수 학생을 챙기기 어렵다"며 "이 수업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교실 분위기를 확 바꿔 보겠다"고 했다.
◆수업, 학생 참여 중심으로 바꿔야 할 때
아직 우리 수업 풍경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잠에 취한' 교실 분위기를 깨우기 위해,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생의 수업 참여도를 높이는 쪽으로 수업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외국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학생 참여 중심 수업이 국내에도 조금씩 소개되고 있다.
'거꾸로 교실'은 최근 들어 관심을 받고 있는 수업 방식. 부산 동평중의 사례를 살피고 벤치마킹하려는 학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동평중은 ▷3학년의 국어, 역사, 과학 등 3개 영역 ▷2학년의 영어, 수학, 역사, 과학 4개 영역에 '거꾸로 수업'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동평중 유창준 교장은 "꾸준히 이 수업 방식을 시행하다 보면 잠을 자는 아이가 사라져 수업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은 물론 성적도 조금씩 상승 곡선을 그릴 것"이라며 "수업 진도나 진학 실적을 걱정해 정규 수업 때 이 방식을 도입하기가 망설여진다면 방과후 수업이나 자율학습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시도해보길 권한다"고 했다.
부산 동평중의 사례를 연구한 대구대 교육대학원 이민경 교수는 "전통적인 수업은 가르침(teaching) 중심이지만 '거꾸로 교실'은 배움(learning) 중심이고, 이때 교사의 역할은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습 조력자 내지 촉진자"라며 "교사들은 자신들이 수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성장 과정이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거꾸로 교실'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것이 유대인의 전통 교육방식이라는 '하브루타'다. 부천대 전성수 교수에 따르면 하브루타는 원래 유대인의 경전 탈무드를 공부할 때 함께 토론하는 짝을 이르는 말. 그러던 것이 짝을 지어 질문하고 토론하는 교육 방법을 일컫는 말로 의미가 확대됐다. 즉,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며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이 하브루타다.
전 교수는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하브루타 수업"이라며 "생각하게 하는 교육, 질문하는 교육이 미래 교육의 키워드이고 하브루타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대구에서도 하브루타에 관심을 보이는 교사들이 있다. 작년 초 초교 교사 7명, 중학교 교사 7명 등 교사 14명이 만든 '행복수업 디자인연구회'는 전 교수의 강의를 들은 뒤 학교 수업에 이 방식을 적용하고 그 사례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
이 모임의 김령희(심인중) 교사는 "보통 토론 수업을 한다고 하면 4명을 한 조로 묶는데 2명이 한 조를 이루니 소외되는 학생이 없다"며 "서로 익힌 내용을 묻고 답하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할 뿐 아니라 예전 강의식 수업 때보다 익힌 내용도 오래 기억하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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