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 참여마당] 수필-버드나무

마을 비포장 길을 비집고 관광버스 두 대가 들어왔다.

기사는 식지와 중지 사이에 고급담배를 빼물고 한껏 폼을 잰다. 주변으로 동네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옷을 차려입고 여행 가방을 양손에 든 채 관광버스 주변으로 모여든다.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 영덕으로 관광을 떠나는 모양새다. 평상시 분주하시던 어머니는 오늘따라 대문 밖으로 눈길조차 주질 않는다. 새끼를 낳은 지 오래되지 않은 누렁이를 돌보는 체하시는 것이 못내 마음 아프다.

여행이라고는 아버지 살아생전 부곡온천으로 당일치기로 갔다 온 것이 전부인 어머니로서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현실에서 여행을 간다는 것이 사치가 아니었을까?

자식새끼들 밀린 공납금 걱정을 가슴에 담아두다 보니 자식들과 눈도 못 맞추는 어머니 어깨가 유난히 움츠러져 보이고 허리마저 굽어 보인다.

왁자지껄하던 소란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간 관광버스 뒤를 따라 멈추고, 석유곤로에 끓인 된장국과 김치 몇 조각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어머닌 들일을 나가자고 재촉한다.

칼로 듬성듬성 조각낸 씨감자를 재로 버무리고 잘 띄운 소거름을 경운기에 퍼 담은 후 중학교 2학년인 남동생과 초등학교 5학년인 여동생, 칠순의 할머니를 경운기 적재함에 태우고 함께 산모퉁이를 물고 있는 채전 밭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마음에 거슬린다.

채전 밭은 아버지 산소와 가까운 곳이다.

경운기를 운전하며 힐끔힐끔 돌아보니 할머니는 아버지 산소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다. 눈가에는 이슬이 그렁그렁하다. 하나뿐인 외아들을 가슴에 묻고 말 못 하는 그 한을 소리 없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세 살 때 이국만리 만주로 돈 벌러 간다며 떠난 할아버지는 감감무소식인데다가 애써 키운 자식마저 앞세워서 그런지 한스런 노래를 자주 부른다.

'석탄백탄 타는 데는 연기만 펄펄 나고요~~~, 내 가슴 타는 데는 연기도 안~~나~~네.'

중얼중얼 의미를 헤아리지 못하는 백탄가를 들으며 채전 밭에 도착하여 어머니가 부리는 쟁기를 동생과 나는 번갈아 가면서 끌었다.

구불구불 마련된 고랑에 여동생과 어머닌 씨감자를 소담스럽게 심었다.

남동생과 나는 개울에서 길어온 물동이를 혀가 쑤욱 둘러 빠질 정도로 길어다 부었다.

어느덧 밭둑에 심어둔 버드나무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즘 영덕으로 떠났던 관광버스가 뽕짝을 크게 틀고 돌아오는 모양이다.

'아이 씨, 와 이래 씨끄럽노.' 나도 모르게 상스런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마음 좀 헤아려주지.

기분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돌아온 집안은 냉기 그 자체다. 다섯 식구 둘러앉아 쪄 놓은 식은 고구마를 허걱허걱 먹어 치운다. 그래도 마음만은 따뜻하다. 의지할 가족이 있고 희망이란 말이 있으니까.

이근항(경산시 백천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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