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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40만 일본군과 전투하다 장렬히 숨진 윤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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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결해서 적을 사살하기 바란다." 중국 국민당 정부군과 맞서 싸우던 중공군과 함께 3천~4천 명의 조선의용군을 이끌고 20개 사단 40만 일본 대군과 싸우다 41세로 장렬할 최후를 마친 조선의열단 출신의 윤세주(1901~1942)가 죽음 직전 남긴 절규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나라를 잃고 국민학교에서 일본왕의 출생 기념일에 받은 일장기를 화장실에 버릴 만큼 일본을 증오했다. 중학교 땐 교내 비밀조직인 연무단(練武團)을 조직, 금지된 개천절기념 행사를 가지는 바람에 학교는 폐쇄됐다. 1919년 고향에서 3'1만세운동을 하다 일제에 쫓겨 중국으로 망명했다. 독립군양성 무관학교인 신흥무관학교에 입학, 군사교육을 받았고 그해 11월 친구 김원봉(金元鳳) 등 13명과 조선의열단(義烈團)을 만들었다.

조선총독부 등 일제 침략기관 파괴와 원흉 처단을 위해 신철휴(申喆休) 등과 국내로 잠입, 1920년 오늘 서울 비밀회합을 갖다 체포돼 5년 4개월의 옥살이 끝에 1927년 출옥했다. 1932년 여름 중국으로 재망명, 10월 조선민족혁명간부학교에 들어가 이듬해 4월 제1기로 졸업했다. 그해 11월 결성된 한국대일전선 통일연맹의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 뽑혔고 이후 중국과 제휴해 만든 조선의용대의 핵심활동도 맡았다. 조선의용군으로 이름 바꾼 부대를 이끌고 중공군과 함께 1942년 40만 일본군과 피할 수 없는 전투를 치르다 결국 숨을 거두었다. 1943년 6월 중경에선 추도회로 그를 기렸고,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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