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우등과 열등 사이

고향 마을에는 '무식한 천재'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 일자무식꾼이지만 수완 하나는 천재성을 보여 붙여진 별명이다. 본인이야 못 배워서 그렇다지만, 공부 잘하는 자식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원래가 공부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모양이다. 농사를 짓지만 대도시에 땅 투기를 할 정도로 엄청난 재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그는 "길거리에 돈이 굴러다니는데 왜 줍지를 못 하노?" 란 '망언'을 해 가뜩이나 빠듯하게 사는 마을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1990년대, 막노동을 하다가 서울대에 수석 입학한 장승수 군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란 책을 펴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재수를 하면서 여러 직업을 전전해봤지만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것이다. 당시 장승수 신드롬은 성적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많은 이들을 황당하게 했다. 공부가 가장 쉽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부자가 가난한 사람 사정 모르듯, 우등생은 결코 열등생의 심정을 알기 어렵다.

필자는 고교시절, 품행은 방정했지만 학업 성적은 별로였다. 나름 열심히 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어릴 때는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말이다. 성적이 안 좋은 학생 중에는 공부를 '안 해서'와 '못 해서'의 두 부류가 있는데, 내 경우는 후자에 속했다.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게 있다. 공부도 그렇다. 어느 정도는 타고난 자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달리기가 안 되는 사람은 아무리 연습해도 한계가 있다. 음치도 마찬가지다.

공부할 사람은 공부하고, 장사할 사람은 장사하고, 기술 배울 사람은 기술 배우면 되지 꼭 공부만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공부도 따지고 보면 여러 재주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꿩을 잡는 것은 매고, 쥐를 잡는 데는 고양이가 최고인 것이다. 가장 잘 하는 것을 하면 된다. 세상살이는 학교 공부처럼 딱 부러지는 모범답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 우등생이 사회 열등생'이란 말도 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유연한 사고(思考)일 뿐.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시대'라고들 한다. 가난한 집에서는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뜻일 게다. 과연 그럴까? 이 시대의 마지막 '개룡(개천에서 난 용)남'이라는 장승수 변호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학벌'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꿈과 열정, 성실로 각 분야에서 성공한 '개룡'들은 주위에 많습니다." 백번 맞는 말이다. 꼭 학벌만이 출세의 지름길은 아닐 것이다. 용이 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한 가지를 잘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장삼철/(주)삼건물류 대표 jsc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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