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kg당 생산비 350원·경매가 340원" 눈물 줄줄 양파밭

양파탑 쌓이는 농촌 현장

10일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마을 길 한쪽에 농민들이 쌓아놓은 양파 자루가 마치 담장처럼 길게 뻗어 있다. 양파 공급 과잉으로 양파 구매 상인들이 예년과 달리 마을을 찾아오지 않자 판로를 찾지 못한 양파가 마을 곳곳에 쌓여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10일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마을 길 한쪽에 농민들이 쌓아놓은 양파 자루가 마치 담장처럼 길게 뻗어 있다. 양파 공급 과잉으로 양파 구매 상인들이 예년과 달리 마을을 찾아오지 않자 판로를 찾지 못한 양파가 마을 곳곳에 쌓여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이달 들어 가장 더웠던 10일 오후. 경북 최대의 양파 산지 김천 구성면 일대는 뜨거운 바람 속에 양파 특유의 매캐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구성면을 통과하는 국도 3호선과 지방도 곳곳에 방벽처럼 쌓여 있는 양파 틈새로 바람이 불어오는 탓이다.

지금은 수확한 양파가 보관업자 창고나 유통업자의 손에 들어가 있어야 할 시점. 하지만 엄청난 양의 양파가 수확 당시 모습 그대로 김천 일대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다. 양파 수확은 이미 지난달 20일쯤 모두 끝났다. 하지만 양파를 가져가는 사람은 없다.

◆얼마나 심각한가?

김천 등 산지에서 거래되는 양파 값은 상품 20㎏들이 한 망이 5천300원 선이다. 양파 재배에 들어가는 농자재 등 원가가 7천원 선인 것을 감안하면 한 망을 팔 때마다 최소 1천700원의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손해를 보고라도 팔고 싶지만 양파 값이 싸다는 얘기가 번져서인지 매기가 없다. 주인 잃은 양파가 길가에 쌓여 있어도 농산물 도둑조차 양파를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농민들은 한숨 섞인 농담을 했다.

양파를 노지에 쌓아둔 채 보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7월 말쯤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양파가 썩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농민들의 가슴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타들어가고 있다.

"제때 판매를 못하고 쌓아두면 곧 부패가 시작됩니다. 썩은 양파를 그대로 두면 멀쩡한 다른 양파도 급속하게 부패하게 합니다. 다시 양파 망을 모두 풀어 멀쩡한 것을 골라내는 재작업을 해야 합니다. 돈도 안 되는 것들을 붙들고 지금 뭐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구성면 양파공선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는 이응수 씨는 가슴을 쳤다.

때를 놓쳐 양파를 팔지 못하면 재작업 비용뿐만 아니라 약 30%는 버려야 한다. 요즘 양파 값을 감안하면 재작업은 무리다. 아예 폐기를 해야 할 형편이다.

배추나 무값이 폭락하면 트랙터를 이용해 밭을 통째로 갈아엎는다. 하지만 양파는 이렇게 갈아엎는 경우가 없다. 양파 재배를 위해서는 멀칭비닐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트랙터를 이용해 밭을 갈아엎게 되면 비닐조각이 토양에 섞여 밭을 통째로 망치게 된다. 손해가 나도 인건비를 들여 양파를 수확해야 하는 이유다.

구성면 관계자는 아직 구성면 곳곳에 남아 있는 양파가 약 17만 망에 달한다고 알려줬다. 약 50만 망을 생산했는데 계약 재배 물량 등으로 농협이 수매한 것과 가락동 시장에 출하하는 등 다양한 판로를 통해 판매하고도 남은 물량이다. 인접한 지례면과 대덕면을 관할하는 대산농협에도 약 50만 망의 양파가 쌓여 있다.

역시 양파밭이 많은 고령도 농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고령은 쌍림면을 중심으로 446 농가가 267㏊에 걸쳐 양파를 재배한다. 산지에서 20㎏들이 양파 한 망 값이 6천원 대 안팎으로까지 내려오자 농민들은 절망 속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고령군 쌍림면 김모 씨는 "양파밭을 당장 갈아엎고 싶다"며 "하지만 자식처럼 키운 것들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헐값에 양파 수집상들에게 넘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왜 이런 일이?

양파가격이 폭락한 가장 큰 원인은 과잉생산이다. 최근 5년간 양파 가격이 좋았기에 너도나도 양파를 심었다.

20㎏들이 한 망이 평균 1만원 이상으로 판매되면서 '양파 농사가 돈 된다'는 소문이 돌자 감자 등 다른 작물을 재배하던 농민들이 대거 양파 재배에 뛰어들었다.

올해 전국의 양파재배 면적은 2만3천908㏊로 지난해 대비 19.3%나 폭증했다. 재배 면적이 늘면서 생산량도 148만7천t으로 14.9%가 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장 양파도 쏟아져나왔다. 지난해 수집상들이 20㎏들이 한 망에 1만2천원~1만3천원에 수집해 저장해 둔 양파가 가격이 폭락, 올초 1만원 선에 거래됐다. 식겁한 수집상들은 이제 공격적으로 양파수매를 하지 않는다. 예년에 산지를 방문해 포전거래(밭떼기)를 시도했던 창고업자나 양파 수집상들이 올해는 발길을 뚝 끊었다.

가락동 시장 기준, 올해 양파 가격이 가장 낮았던 시기는 지난달 21일로 직경 8㎝ 이상의 상품이 1㎏당 337원에 판매됐다. 최근 가격이 조금 올랐지만 이달 4일 경락가는 368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시기 경락가가 948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61.2%나 내렸다.

구성면의 한 양파 재배농민은 "20㎏들이 한 망의 생산비가 7천원 정도인데 경매가격이 이보다 낮게 나오면 운임과 수수료 등을 제하면 엄청난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책은 없나?

농민들은 "양파는 정부가 수급품목(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나서 가격을 조정하는 물품)으로 정해둬서 가격이 급등하면 외국에서 수입해 가격안정을 유도하고 있는 만큼 가격이 폭락했을 때도 정부가 나서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양파 가격이 약세를 거듭하자 경상북도와 김천시 등 행정기관이 나서 계약재배 추가물량에 대한 저장비 지원 등 양파 가격 안정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매도시와 택배 직거래를 하거나 재경향우회를 통해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양파도 팔아 주고 있다. 김천시청과 산하기관 임직원들과 혁신도시 이전공공기관 임직원들도 양파 팔아주기를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파 값이 반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더 많다.

이와 관련, 대구경북지역 등 전국의 농민들은 10일 서울에서 열린 우리 농산물 지키기 전국농민대회에 참가, 양파 가격 안정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도로 갓길에 쌓여 썩어가는 양파처럼 무너져 내린 농심은 이제 폭발 직전"이라며 이날 집회 참석자들은 가슴을 쳤다.

김천 신현일 기자 hyunil@msnet.co.kr 고령 전병용 기자 yong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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