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항에서 남서쪽으로 5㎞ 떨어진 해상에 그림 같은 섬이 있다. 80여m의 깎아지른 주상절리와 해식동굴이 있다. 정상부는 평탄하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호도'라고도 불린다. 군사적으로도 천혜의 자연요새라 불릴 만하다. 역사적인 의미도 있다. 고려시대 몽골에서 온 목부들이 난을 일으켜 이 천혜의 요새에서 저항하다 최영 장군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토벌됐다는 기록도 있다. 접근이 너무 어려워 섬을 포위한 뒤 밧줄을 걸어 군사를 올려 보냈다고 한다.
제주도 창세신화에는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베개 삼아 다리를 뻗어 해식쌍굴이 생겨났다는 전설도 있다. 이 굴을 보통 '콧구멍'이라고 부른다. 유람선으로 해상관광을 하면서 쳐다보면 바다 위에 솟은 신비한 절세 풍광과 기기묘묘한 형상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바닷속 역시 볼거리가 많다. 다양한 지형과 제주바다가 보여주는 총천연색의 연산호들이 물질꾼들을 반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대개는 해수면 위의 지형과 바다 지형이 유사한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삐죽이 솟아오른 섬들은 바닷속도 직벽다이빙을 할 수 있어 물질꾼들이 좋아하는 포인트이다. 문섬이나 섶섬, 범섬이 그래서 각광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범섬의 가장 큰 매력은 연산호의 크기에 있다. 2m에 달하는 대형 연산호들이 직벽에 널브러져 있는 장관을 연출한다. 대개 서귀포권의 섬처럼 이곳도 섬비치다이빙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섬에 장비를 내려놓고 한 번은 좌측 직벽을 갔다가 돌아오고 한 번은 우측 직벽을 따라 갔다가 돌아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정도 다이빙으로도 범섬의 환상적인 바다를 보았다고 보통은 난리법석이 날 법하지만 사실은 더 무지막지한 포인트가 있다. 범섬의 '기차바위'라고 불리는 곳이다. 중급자 이상의 실력자라면 수지맨드라미산호의 결정판 기차바위를 보아야 한다. 꽃동산 언덕이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만큼이나 그곳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혹 기차바위에 안 가보신 물질꾼들에겐 강력 추천한다.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보트다이빙을 추천하고 싶다. 섬에서 접근하는 방법도 있으나 유능하고 경험 많은 가이드가 필요하고 팀원 모두가 공기 소모량과 실력이 모두 출중해야 하므로 안전과 편리함을 고려할 때 보트다이빙이 훨씬 낫다. 보통 약간의 추가금을 주면 범섬에서 다이빙을 마치고 들어가든지 아니면 기차바위를 보트다이빙하고 범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기차바위는 기차처럼 생겼다. 바닥은 25~30m권이고 기차 천장은 20m 정도다.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힘든 대형 해송과 백송, 분홍바다맨드라미와 수지맨드라미산호, 다양한 고르고니언산호, 예쁜이 해면 등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밀집적이고 대형의 총천연색들이 완전 집합 군체로 존재하고 있다. 수심이 깊어 초보자인 경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기차바위를 잘 감상하고 상승하다가 5m 지점에서 안전 감압정지를 하고 있는데 함께 들어간 초보자가 정지하지 못하고 물 위로 붕 떠버리는 게 아닌가. 베테랑 가이드와 필자도 있었지만 돌보지 못한 것이다. '잘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빚은 결과였다. 다행히 상승 속도가 규정보다 천천히 올라왔기 때문에 별일 없이 잘 마무리됐지만 큰일 날 뻔한 사고였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잠수계의 격언이 있다. 필자가 초보자 옆에 딱 붙어 있었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을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놓쳐 버린 사건이었다. 훈련이 아무리 잘 되어 있더라도 실전에서 기차바위 같은 황홀한 변수를 만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고경영(스쿠버숍 '보온씨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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