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뽑은 떡으로 만든 떡볶이' '시장에서 맛보는 정통 이탈리안 피자'.
전통시장에 젊은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 상인들이 입점하면서 손님도 젊어졌다. 젊은 상인들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전통과 유행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맛나고 볼거리가 있으니 저절로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젊음'은 최근 전통시장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할머니 전통 이어가는 '로라방앗간'
대구 중구 방천시장 로라방앗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앗간이라는 선입견은 와르르 무너진다. 가게의 절반을 차지하는 주방 한쪽에는 여느 방앗간처럼 떡을 뽑는 기계가 있다. 그 경계선 너머엔 손님을 맞을 5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다. 대수롭지 않은 풍경을 조금만 지켜보면 이 가게 사장의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다. 요란한 기계에서 막 뽑은 하얀 가래떡은 곧바로 빨간 색깔을 입은 양념장 속으로 옮겨져 떡볶이가 된다. 원스톱 떡볶이의 탄생과정을 손님들은 생생하게 지켜보게 된다.
원래 이곳은 '시장방앗간'이라는 이름으로 떡을 만들던 말 그대로의 떡방앗간이었다. 1983년 문을 연 이곳은 수많은 시민에게 떡을 제공했던 방천시장의 터줏대감. 그러나 외국의 패스트푸드 등의 '공습'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명맥만 유지하는 신세로 전락했었다.
30년간 방앗간을 지켜온 배소임(80) 할머니를 지켜본 외손자 박근태(30) 사장은 큰 결심을 하고 서울의 직장을 그만두고 이 전통시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연로하신 외할머니를 돕고 싶었어요. 가게가 김광석길에 있어 젊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걸 보고 방앗간에서 직접 떡을 뽑아 떡볶이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30년간 이 방앗간을 지켜온 할머니의 자부심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젊은이들의 구미에 맞는 걸 접합한 거죠."
그렇게 해서 지난 3월 '시장방앗간' 간판이 '로라방앗간'으로 바뀌었다. 가게 입구에는 할머니가 사용하시던 옛날 롤러를 실내장식용으로 전시해 가게의 역사를 은근슬쩍 자랑했다. 떡은 30년 경력의 베테랑 할머니가 매일 뽑고 손자는 양념을 버무려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이 방앗간은 간판을 바꾼 지 4개월 만에 김광석길의 명소로 떠올랐다.
박 사장은 "떡을 만드는 쌀은 시장 내 가게에서 사오고, 시장 내 다른 방앗간을 생각해 떡은 팔지 않아요. 나 혼자 잘살겠다고 다른 상인에게 폐를 끼칠 순 없죠. 더 많은 손님이 와 다른 가게도 덩달아 매출이 올라 방천시장이 전국 명소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시장에서 만나는 새 메뉴, '가창송하피자'
칼국수, 어묵, 호떡 등 다양한 먹거리를 만날 수 있는 서문시장. 지난 3월 이 시장에 낯선 메뉴가 등장했다. 집에서 배달을 시켜먹거나 레스토랑에서 만나볼 수 있는 피자를 만들어 판매하는 가게가 문을 열었다. 가창송하피자는 색다름과 맛이 알려지면서 서문시장의 새로운 맛집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피자와 전통시장이라는 생소한 조합에 호기심으로 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네모난 피자와 범상치 않은 맛에 다들 놀란다. 피자는 각종 채소와 베이컨이 올라간 슈프림, 파인애플이 주재료인 하와이언, 채소류로만 만든 베조 등 3가지가 전부다. 3가지 피자는 12조각, 6조각, 2조각으로 나눠 파는데 12조각은 1m 정도의 크기 때문에 '1m 피자'로도 불린다.
가창송하피자의 사장 장지예(30) 씨는 피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최상급의 재료는 물론 본점 격인 가창 송하의 레스토랑 요리장인 남편이 피자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부부는 호주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현지 이탈리안 요리장에게 피자 만드는 법을 배웠다.
"지난해 남편, 이모와 함께 가창에 피자, 파스타 등을 파는 레스토랑을 열었고 그중에 피자가 반응이 좋아 서문시장에 작은 가게를 열게 됐어요. 남편이 개발한 소스는 가창 레스토랑 옆에서 직접 키운 채소를 갈아 만들고, 치즈는 가장 좋은 걸 쓰기 때문에 건강함은 물론 맛에도 자신이 있어요."
장 사장이 처음 가게를 준비할 때만 해도 전통시장은 피자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변의 걱정이 많았다. 피자는 아무래도 젊은 층이 선호하는 메뉴이며, 시장에는 나이가 많은 손님이 대부분일 것이란 선입관 때문이었다. 장 사장은 동성로와 수성못 등의 상권을 고려했지만, 막상 서문시장 상권을 분석해보니 20, 30대 손님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피자라는 색다른 메뉴는 서문시장의 쇼핑 풍경도 바꿔놨다. 가창송하피자 인근에는 조각 피자를 손에 들고 쇼핑하는 손님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장 사장은 "장사를 해보니 전통시장에도 많은 젊은이가 찾고 있고 전통시장도 백화점, 대형마트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지녔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전통시장에서는 피자를 먹은 손님들의 반응이 바로바로 나타난다. 이 점이 더 맛있는 피자를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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