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지 기행 아시아를 가다] 고산족 순례-몽족의 결혼식

결혼식 올리고 1박 2일 잔치…부인 300명도 가능한 일부다처제

◆결혼식 밤 풍경

오후 9시가 되자 씨족의 장손과 대표자가 되는 듯한 사내 5명이 기다란 탁자 앞에 나와 앉는다. 그들 앞에는 각각 2개의 술잔이 놓여 있다. 17세 소년이 주전자를 들고 그 잔에 술을 따른다. 이들은 잔을 드는가 싶더니 한 잔을 옆 사람에게 권한다. 다른 사람도 그에게 술을 주며 두 손을 모으고 서로에게 고개를 숙이며 축원을 한다. 술 마시는 풍경이 중국인을 많이 닮았다. 순식간에 한 사람 앞에 6잔이 몰리는가 싶더니 옆 사람 앞에도 4잔의 술잔이 놓였다. 서로 웃으며 잠시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한참 동안 이야기하다 대표자가 일어서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 일어난다. 그중 한 사람이 그들의 전통 노래를 부른다. 다시 술잔이 돌아가고 어린 새신랑도 받아 마시자 술을 따르던 소년들도 마신다.

부엌으로 쓰는 입구 쪽에 작은 형광 불빛 하나가 힘겹게 집안 전체를 밝힌다. 어두컴컴한 신부의 아버지 방에는 늦게 온 손님 몇 사람이 앉아 있다. 움막 같은 조그만 방 안에는 평상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위로 때가 묻은 흰 모기장 하나가 처져 있다. 그나마 그 방도 반으로 막아 한쪽은 옷가지와 이불 등이 쌓인 창고로 쓰고 있다. 어디서 가져 왔는지 청년 하나가 들어오더니 긴 전기선을 코드에 꼽아 불을 밝힌다.

52세 부부는 한평생 이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게 새벽녘이면 들판으로 나가 하루종일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을 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돌아왔을 것이다. 그렇게 오지 사람들은 산속 바람과 구름과 같이 살아왔다. 하지만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그나마 그 집은 다른 집에 비해 깨끗하다. 판자 사이로 햇볕이 들어온다. 해가 뜨면 집 안에서도 윤곽이 환히 보일 정도다. 그 바깥쪽에 평상이 하나 놓여 있다. 역시 때가 많이 묻은 흰 모기장 하나 걸려 있는데, 16세 막내아들이 잔다고 했다.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다섯 사람은 새벽 2시까지 5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계속 했다. 30대 사내까지 끼여 이 집 아들 결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데 다른 이야기도 하는 것 같았다.

◆결혼 사진 없는 사람들

다음 날 아침 6시. 마을 사람들은 벌써 일어나 위스키 잔을 기울이고 있다. 우물가에는 10대 소년들이 모여 하얀 돼지 털을 벗긴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 삼아 모여 하루종일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소수 민족으로서의 외로움과 정한을 나눈다. 인근 깔리양족들은 마을의 교회에서 패스터(신부, 목사)의 주례로 식을 올리고 1박 2일 동안 논다고 한다. 몽족과는 노는 풍경과 약간 다르다. 몽족은 어느 집을 가나 결혼사진을 보기가 힘들다.

오후 5시가 넘자 다시 사람들이 탁자 주위로 빙 둘러 앉고 술잔이 돌아간다. 오늘은 콰이(태국어로 버팔로)라고 부르는 큰 잔과 와우(소)라는 하는 작은 잔이 돈다. 안주도 변변치 않지만 웃음소리는 가시지 않고 서로 옆 사람에게 권하며 못다 한 덕담을 나눈다. 잠시 후 식탁 주위에 않았던 사람들이 일어서자, 어제와는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10대 소년 두 명이 수저에 밥과 고기를 얹어 일일이 한 사람씩 주며 한 바퀴를 돈다. 이어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전통 노래를 부른다. 한참 후 수저에 든 것을 식탁에 엎어 버린다. 특별히 다른 반찬은 없고 밥과 돼지국만으로 저녁을 먹는다.

마당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한 사내가 먼 산을 바라보듯 마당 귀퉁이에 쭈그려 앉아 있다. 가만히 다가가 보니 헐렁한 전통 바지 아래로 거시기를 내놓고 오줌을 누고 있다. 뒤에는 아낙들이 많이 서 있지만 사내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윽고 사람들이 하나 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마당에 환하게 켜놓은 불빛 아래에는 7명의 자손과 푸이(여) 5명, 푸차이(남자) 2명과 아이들까지 앉아 결혼식에 관한 뒷이야기를 하고 있다. 빠이에서 온 신랑 '쌍'도 앉아 있고, 그 옆에 어린 신부 '썬'도 다소곳이 앉아 하얀 젖가슴을 내놓고 10개월 된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깔리양, 몽, 라후, 샨, 아카, 러와, 란나 피플 등 수많은 종족들이 모여 한 민족으로 동화되어 가는 산속 마을 밤은 깊어만 간다. 이곳을 떠나면 언제 이들과 다시 만날까.

◆부인이 300명이나 되는 몽족

몽족은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다. 신랑의 아버지는 부인이 셋이다. 하지만 이들 종족에게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태국에서 인기 프로인 '어메이징 타일랜드'를 보면 인근 '빤웅 마을'에 사는 한 사내는 부인이 3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숫자가 너무 많아 마을 사람들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 집은 학교 기숙사처럼 2층으로 길게 지어져 있는데 인근에도 가족들이 산다. 명절에는 인근 도시와 마을에 사는 자손들이 오는데 마치 새로 개학한 학교처럼 숫자가 많다고 한다. 아이들은 망태를 메고 낫을 들수 있는 나이면 오토바이나 차에 마을 사람들을 태우고 들로 나간다. 그만큼 오지에서는 자손들이 큰 재산이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푸른 하늘처럼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문명인들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 그 모습이 때로는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로 돌아간 듯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냥 있는 그대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집은 신랑 집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수줍은 신부는 태국 국민에게는 정신적인 지주이며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도이(산) 인터논' 기슭에 있는 '끄랑' 마을에서 왔다. 오지마을 고산족들도 무척이나 축구를 좋아해 자주 시합이 열린다. 한 달 전쯤 스포츠가 열리는 날 이 마을 교회에서 하룻밤을 그들과 어울려 잔 적도 있다.

윤재훈(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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