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버터밀크·코리앤더홀 이슬람식 '할랄 푸드' 고향맛에 필수죠

낯선 슈퍼마켓-외국인들의 장보기·음식만들기

김강산 씨가 장을 본 것들. 이날 김 씨는 약 10가지 제품을 구입했는데, 코리안더홀을 포함한 일부는 외국인 슈퍼마켓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화섭 기자
'글로벌마트'의 주인 무함마드 씨가 김강산 씨에게 포코라 재료로 쓸 튀김가루를 추천해주고 있다. 이화섭 기자
100명분의 브리야니를 만들기 위해 닭고기와 각종 채소들을 커다란 솥에 넣고 볶고 있다. 이화섭 기자
김강산 씨가 장을 본 것들. 이날 김 씨는 약 10가지 제품을 구입했는데, 코리안더홀을 포함한 일부는 외국인 슈퍼마켓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화섭 기자
예배가 끝난 후 큰 쟁반에 가득 담긴 브리야니를 나눠 먹고 있다. 이화섭 기자
100명분의 브리야니를 만들기 위해 닭고기와 각종 채소들을 커다란 솥에 넣고 볶고 있다. 이화섭 기자
예배가 끝난 후 큰 쟁반에 가득 담긴 브리야니를 나눠 먹고 있다. 이화섭 기자

한국에 외국인들을 위한 전용 슈퍼마켓이 생긴 건 일본 도쿄의 신오쿠보 지역이나 미국 뉴욕, LA 코리아타운에 한국상품을 파는 슈퍼마켓이 생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구 북부정류장, 성서산업단지, 계명대 근처에 외국인들을 위한 슈퍼마켓이 많이 생긴 것도 그곳에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그들 또한 고향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싶기 때문이다. 음식은 '향수'(鄕愁)를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해외여행지에서 외국 음식에 신물이 날 때쯤 만나는 한국식당의 김치찌개가 한국을 생각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슈퍼마켓에서 식재료를 사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현장을 찾아갔다. 비록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오랜만에 모인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며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사람과 똑같았다.

◆"웬만한 건 다 있어요"

'지방선거판의 외국인 선거운동원'으로 본지에 소개된 김강산(파키스탄 이름 찌마 패설'34'본지 6월 14일 자 12면 보도) 씨가 22일 대구 서구 비산동 북부정류장 근처 외국인 슈퍼마켓 '글로벌 마트'를 찾았다. "북부정류장 맞은편에 있는 이슬람센터에 모인 사람들과 같이 먹을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장을 볼 예정"이라고 해서 기자가 동행을 요청했다.

기자가 동행한 이날은 이슬람교의 금식 기도 기간인 '라마단' 기간이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 물조차 입에 대지 않고 기도하는 기간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해가 진 이후에나 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무슬림들은 이슬람센터에 모여 기도 후 일몰을 기다렸다가 같이 음식을 나눠 먹는 경우가 많다. 김 씨도 기도 후 같이 나눠 먹을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슈퍼마켓에 들른 것이다.

이날 김 씨가 만들려는 음식은 '치킨 브리야니'와 '포코라', 과일 샐러드, 우유 소다였다. 치킨 브리야니는 인도식 닭고기 카레 볶음밥이고, 포코라는 야채튀김이다. 채소류 중 외국인 슈퍼마켓이 아니더라도 구할 수 있는 것들은 근처 시장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산다. 외국인 슈퍼마켓에서 산 건 향신료 종류로 우리나라 슈퍼마켓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김 씨가 이날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식재료는 대략 10가지 정도였다. 버터밀크(유지방을 정제한 우유), 코리앤더홀(고수풀의 씨앗) 등 일반적인 매장에서 구매하기 어려운 식품들이 많았다. 또 향신료 중 고추기름처럼 생긴 병이 있었는데, 김 씨는 "우유 소다를 만들 때 색깔과 향을 내는 재료"라고 말했다. 슈퍼마켓 주인 무함마드(45) 씨는 "대부분 수입 가능한 가공식품이나 향신료 등을 많이 사가기 때문에 웬만한 식재료는 다 구해 놓는 편"이라고 말했다.

◆같은 듯 다른 식재료

식재료를 이것저것 고르던 김 씨는 우리나라의 부침가루나 튀김가루처럼 포장된 가루 한 봉지를 집어들었다. 콩가루에 가까운 색깔이었다. 김 씨는 "포코라를 만들 때 쓸 튀김가루"라고 말했다. 브리야니를 만들기 위한 시즈닝 소스도 따로 나온 것이 있었다. 아몬드, 캐슈넛, 통후추 등은 우리나라에서 파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에게 가장 구하기 어려운 것은 쌀이다. 우리나라 쌀로는 브리야니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 쌀 특유의 찰기 때문이다. 또 동남아시아나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은 햅쌀보다는 묵은 쌀을 선호하는 차이도 있다. 김 씨는 "한국 쌀이 1㎏당 1천원 안팎인 데 비해 파키스탄 쌀은 1㎏당 2천원 안팎이라 그보다 더 싼 태국 쌀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슈퍼마켓 한쪽에 놓인 냉장고에는 'HALAL MEAT'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무함마드 씨와 김 씨에게 물어봤더니 "'할랄 푸드'라고 해서 이슬람 방식으로 도축한 육류를 보관하는 냉장고"라고 답했다. '할랄'이란 아랍어로 '허용할 수 있는'이란 뜻인데 '할랄 푸드'라고 하면 이슬람 율법상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말한다. 짐승의 머리를 메카를 향해 눕히고 기도를 한 다음 고통을 없애기 위해 단칼에 목을 치고 모든 피를 다 빼는 방식이 이슬람식 도축 방식인데 우리나라 일부 도축장을 제외하고는 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김 씨는 "치킨 브리야니에 들어갈 닭고기도 할랄식으로 도축된 것"이라고 말했다.

◆해 지는 순간 식사 시작

음식에 들어갈 다른 채소를 산 뒤 북부정류장 근처 이슬람센터에 도착한 시각은 아직 해가 지기 전인 오후 5시였다. 해가 질 시각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장을 본 식재료로 요리를 시작했다. 과일 샐러드를 만드는 사람들은 복숭아, 사과, 바나나를 잘게 썬 뒤 후르츠칵테일 통조림의 내용물을 붓고 후추를 조금 뿌린 뒤 버무려놓았다. 포코라를 만드는 사람들은 감자, 양파, 시금치, 고추를 잘게 썬 뒤 포코라 용 튀김가루에 버무려 튀겼다. 또 다른 큰 솥에는 브리야니를 만들기 위해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닭과 각종 채소 등을 넣고 열심히 볶고 있었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각인 오후 7시 45분이 다가올수록 음식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이윽고 일몰 시각이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각인 오후 7시 45분이 되자 두 줄씩 마주 보고 앉은 사람들 사이에 음식이 놓였다. 우유 소다, 과일 샐러드, 포코라가 맨 처음 등장했다. 이맘(imam'이슬람교 예배 시 지도자)의 기도를 시작으로 차려진 것들을 간단히 먹었다. 오후 8시가 되자 30분간 예배와 이맘의 설교가 있은 뒤 브리야니가 나왔다. 큰 쟁반에 담긴 브리야니는 순식간에 없어졌다. 사람들은 식사하면서 종교에 관한 이야기부터 한국생활의 어려움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이날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 발견 이야기도 화제가 됐다. 김 씨를 도와 함께 장을 봤던 이니딘(42) 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기다리다 보면 참을 수 있다"며 "요 며칠 힘든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잘 견뎌내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오늘 이맘의 설교에서 '한국 사람의 법과 관습을 존중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여라'고 했는데 아마 음식의 맛과 함께 다들 깊이 새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9시가 되자 사람들 대부분 식사를 마친 뒤 오후 9시 30분에 있을 마지막 예배를 준비했다. 이들의 라마단은 28일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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