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에 제작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 유명한 자동차 게임 장면이 나온다. 짐(제임스 딘 역)이 주디(나탈리 우드)에게 접근하자, 주디의 남자친구인 버즈가 짐을 경계하며 갈등이 고조되고, 마침내 버즈는 결판을 위한 시합을 제안한다. 각자의 자동차로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다가, 겁에 질려 먼저 차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패자가 되는 치킨게임(chicken game)이다. 그러나 게임을 시작하기 직전 두 남자는 서로에게 우정을 느낀다. "사실 난 네가 마음에 든다"고 버즈가 먼저 고백한다. "그럼 왜 이 짓을 해야 하지?"라고 짐이 대꾸하자, 버즈가 "그래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어?"라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는 함께 슬퍼했고 함께 분노했다. 사회의 구조적 병폐에서 비롯된 인재라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있었고, 정치권도 여야 할 것 없이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가 혁신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여야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극도에 달한 유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주장했다. 진상조사특별위원회의 수사 및 기소권 요구가 주요 내용이었다. 그들의 상실감과 분노에 비추어 충분히 이해가 되고, 특별법 취지가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는 부분이어서, 여야 간의 타협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는 논제였다.
그러나 일부 야당 의원들이 '희생자의 의사상자 지정과 단원고 학생들의 대학 특례입학'을 특별법의 조항으로 집어넣으면서, 국민적 공감대가 허물어지고 논의의 본질은 왜곡되고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세월호 사고의 구조작업, 수사과정, 책임자 문책과 정부 개편에 이르기까지 악수(惡手)를 연발한 집권 여당은 7'30 재보선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바둑을 두다 보면 쌍방이 실수를 반복하지만, 승패를 가르는 것은 역시 '최후의 악수(惡手)'이다. 세월호 사고의 유가족들이 주장하지도 않은 무리한 수를 야당이 둬 버렸으니, 전형적인 자충수라 하겠다.
결국, 전국 15곳에서 열린 7'30 재보선에서 11대 4라는 야당의 참패로 이어졌고, 야당의 텃밭인 전남 순천'곡성에서조차 새누리당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문제의 법안을 발의한 야당 의원은 '이유 없는 반항'의 젊은이들처럼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어?'라는 치기 어린 생각을 했던 것일까.
선거에서 네거티브 광고는 투자 대비 효과라는 측면에서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선호된다. 스스로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이, 네거티브에 의해 민심이 경쟁자로부터 등을 돌리게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7'30 재보선이 임박하면서 일부 야당 의원이 발의한 세월호 특별법의 내용은 여당의 네거티브 전략에 호재가 되었다. 여당은 더 이상의 다른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의사자 지정과 대학특례입학'이라는 조항의 부정적인 이미지만 부각시키면 되었고, 그것조차 여당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국민의 반대 여론이 거세지면서 그 효과만 누리면 되었던 것이다.
어떤 기대를 했다가 그 기대가 무너지면 사람들은 좌절한다. 이때 좌절은 오히려 다른 행동을 유발하는 하나의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다.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좌절 효과'(Frustration Effect)이다. 세월호 사건의 조사와 처리 과정에서 야당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은 야당 의원의 어처구니없는 발의에 좌절하고, 국민적 트라우마에 대한 어떤 위로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반동 심리로 오히려 집권여당에 표를 몰아주는 행동을 동기화시킨 것이다.
'좌절 효과'나 '네거티브 광고'에 의한 정치적 선택이 국민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선거는 이렇게 진행됐다.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은 빨간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다. 묘하게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상징 색깔과 일치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국민 앞에서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이유 없는 반항'이나 일삼는 '치킨'처럼 여겨지는 것은 나뿐일까.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어?' 하는 쇼맨십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강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진 성숙한 정치권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때, 국민은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이석화/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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