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폭우 속 계곡 옆 '명당' 찾기…목숨 건 피서 행렬

승용차 탑승자 7명이 참변을 당한 청도군 운문면 신원천변의 한 오토캠핑장. 야외활동 증가로 캠핑장이 늘어나고 있지만 당국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않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승용차 탑승자 7명이 참변을 당한 청도군 운문면 신원천변의 한 오토캠핑장. 야외활동 증가로 캠핑장이 늘어나고 있지만 당국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않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피서만 있고 안전은 없다. 대구경북지역은 물론 전국 곳곳의 피서지에서 흔히 목격되는 광경이다.

계곡 피서지에서 고립되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돼버렸다.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에다 비구름 사진까지 휴대전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파악되는 세상이 됐지만 태풍 예보가 나와도 계곡 주변 등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곳에 피서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방재 전문가들은 "안전도 국격(國格)"이라며 "안전은 다른 사람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역량을 이제 갖춰야 한다"는 충고를 내놓고 있다.

◆"안전? 그런 거 몰라요"

태풍 나크리가 지나간 지난 주말과 휴일, 김천 증산면 수도산 계곡에는 약 130㎜의 비가 쏟아졌다. 폭우가 쏟아지자 계곡물이 순식간에 불어났고 3일 하루에만 6명의 피서객이 소방관의 도움을 받아 야영지를 빠져나왔다.

비가 그친 뒤 4일 기자가 찾아간 수도산 계곡. 피서객들이 몸만 빠져나오느라 철거하지 못한 텐트가 지난 며칠간의 위급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남아있는 피서객들은 불과 하루 전 벌어진 구조상황에 대해 전혀 무관심했다.

김천 증산면사무소는 이날도 여전히 계곡물이 불어나 있으니 피서객들에게 위험한 곳에 들어가지 말 것을 당부하는 방송을 연신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비가 오든 말든 계곡 건너편에 자리한 피서객들은 자리를 옮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수도산 계곡은 도로를 옆에 끼고 길게 이어져 있다. 피서객들은 도로에 차를 세우고 물을 건너 자리를 잡는다. 도로 쪽은 나무 그늘이 없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그늘을 찾아 계곡을 건넌다. 평상시에는 쉽게 건널 수 있지만 비가 오기 시작하면 급속하게 불어나는 계곡물 탓에 피서객들이 쉽게 고립된다. 매년 반복되지만 피서객들의 물 건너 자리 잡기는 올해도 여전하다.

이 때문에 수도산 계곡에서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한두 건씩 수난구조 요청이 발생한다. 김천소방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1년에는 3건의 구조요청이 들어와 42명을 구조했으며 지난해에도 2건의 구조신고가 있었다. 올해는 3일까지 모두 3건의 구조요청이 있었다. 5년간 8건. 49명이 소방관의 도움을 받아 계곡을 벗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목숨을 건 피서가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며 바라본 수도산 계곡.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계곡에 설치된 방송시설에서는 "비가 내리니 위험하다"는 경고 방송이 잇따라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철수를 준비하는 피서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방재 전문가들은 원칙에 따른다면 하천변 야영은 금지라는 한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실제 낙동강 본류 주변과 안동댐'임하댐 주변 등 수심이 깊은 하천 주변은 야영이 금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피서객은 드물다. 고두종(56) 청송 의용소방대장은 "피서객들이 계곡이나 강물에 대해 정말 무지하다. 물길을 아는 마을 주민들조차 큰물이 불어날 때는 하천 근처에도 오지 않는다. 해당 지역 소방서나 경찰서, 읍면동사무소에 안전한 위치인지를 물어본 뒤 야영지를 정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제 목숨 걸고 하는 피서는 멈춰야 한다"고 했다.

◆"안전 지도요? 그런 말 아예 안 듣습니다"

"아무리 안전한 곳에서 야영하라고 권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김천 수도산 계곡 주변 증산면사무소 공무원들은 피서객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계곡 곳곳에 설치된 방송시설을 이용해 수시로 방송을 하는 것은 물론, 차를 몰고 현장을 찾아가 위험한 지역에 자리를 잡은 피서객들에게 나와달라고 당부를 하지만 쳐다보기만 할 뿐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 "서울이나 경남 등 멀리서 온 피서객들은 대피하라면 오히려 화를 냅니다. '귀한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왔는데 비가 안 오면 당신이 책임질거냐'며 발끈합니다."

증산면사무소 공무원들은 혀를 찼다. 언제 어디서 큰 참사가 날지 정말 불안하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물놀이 철 때마다 행정기관은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피서지 안전지도에 나서지만 글자 그대로 지도일 뿐이다. 대피를 강제할 권한이 없다 보니 지자체 한 곳당 수백 명의 인력을 동원해보지만 안전성을 담보할 효과적 조치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여름철 극성수기 하루 3만 명이 몰리는 포항 북구 죽장면 일대 계곡. 포항시는 이곳에 여름철 극성수기엔 관리인원 139명을 보낸다. 죽장면 일대 38㎞ 구간을 자호천'현대천'가사천'하옥계곡 등 4구역으로 나눠 경찰과 자율방범대'공무원'자원봉사'공공근로 등의 인원을 집중 배치한다. 하지만 이곳 안전요원들 역시 "피서객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하소연을 쏟아내고 있다.

영주에는 풍기읍 삼가리 2곳, 부석면 남대리와 단산면 마락리 각 1곳 등 4곳의 사설 야영장이 있다. 모두 하천변에 설치돼 있다 보니 갑자기 물이 불어날 경우,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영주시는 비가 올 때에는 야영을 자제할 것을 요청하지만 말을 듣는 사람은 없다.

이면구(56) 안동소방서 예방안전담당은 "장마나 집중호우 예보 시 계곡이나 하천 주변에 가는 것 자체가 위험한데 이를 지키는 피서객은 드물다"며 "하천의 수위는 일반적으로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높아진다.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 자체가 정말 위험하다"고 했다.

영주 봉화 마경대 기자 kdma@msnet.co.kr 포항 이상원 기자 seagull@msnet.co.kr 김천 신현일 기자 hyunil@msnet.co.kr 안동 청송 전종훈 기자 cjh4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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