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몰락 자초한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

권위주의자들의 종말은 대체로 비극적이다. 1876년 오늘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난 세르비아의 왕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1889~1903 재위) 역시 그중 한 명이다. 그는 권위주의적 통치 때문에 인기를 잃고 암살당했으며, 오브레노비치 왕조의 종말을 가져왔다.

그도 처음에는 국민의 신임을 얻었다. 왕위에 있는 동안 국가경제를 발전시키고 군대를 개혁했으며, 전 국왕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가 1865~68년에 협상했던 발칸 동맹의 부활을 추진해 세르비아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독선은 그를 파멸로 몰아갔다. 인기 있는 친러시아계 급진당을 내각에서 배제하고, 입법부 권한을 제한하면서 자유주의 헌법을 폐지했다. 각료들을 자주 경질하고, 언론과 결사의 자유도 막았다. 사생활도 그의 몰락을 재촉했다. 1900년 보헤미아 기술자의 과부이며 어머니의 시녀였던, 그리고 평판마저 나쁜 10년 연상의 연인 드라가 마신과 결혼하겠다고 공표하면서 위신은 더욱 떨어졌다. 이에 대한 항의로 내각이 총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03년에는 헌법에 벗어난 개혁조치를 취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헌법을 정지시켜 입헌정치를 우롱했다. 드라가의 동생에게 왕위를 잇게 할 생각도 했다. 결국 저항이 극에 달했고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과 왕비를 살해했다. 국민 대부분은 쿠데타를 지지했다.

석민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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