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모든 국민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일반법을 제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특정국민에게 구체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은 행정부 영역이다. 그런데 국회가 언제부터인가 특정한 국민에게 특수하게 적용되는 특별법을 양산하게 되었다. 그 효시는 1990년 8월 6일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에 관한 법률'이다. 그 뒤로 무수한 특별법이 생겨나서 법전에 수록되지 않는 법률이 훨씬 더 많다.
법률이 많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법철학적으로 말하면 법률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여러 도덕 가운데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규범화하여 놓은 것이 법률이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법률이 최대한의 도덕이 되어 있다. 법률은 지킬 가능성이 희박한 모든 도덕을 망라하였을 뿐 아니라 기존의 법률 위에 우선으로 적용되는 특별법이 다층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가히 법률만능주의, 국회만능주의라고 할 만하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삼권분립은 기본적인 국가조직의 원리다. 국회는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법을 제정하는 임무를 지닌 기관이고,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행정부는 제정된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고, 법원은 구체적인 법 적용과정에서 분쟁이 생겼을 때 법을 적용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회가 행정부의 영역, 사법부의 영역을 침범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미국의 연방의회나 주의회에서 동해 표기병기법안과 같이 특정사안에서 특수하게 적용되는 법안을 제출하기도 하나 미국은 우리나라의 형법, 형사소송법, 민법, 민사소송법 등과 같은 일반법으로서 성문법이 없는 불문법 국가이다. 따라서 미국의 예를 따라서 법안을 만드는 것은 성문법 체계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이 여야 대표 간에 합의가 되었다가 유족, 시민단체 등의 요구로 합의가 번복되어 재협상 중이다. 지금 국회에는 세월호와 관련된 특별법이 10여 개 제안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특별법을 모방하였다고 할 정도로 흡사하다.
과거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 과거사정리위원회 등 2개의 위원회를 유지하는 데 막대한 예산이 들었다. 특검을 운영하면 특별검사 1명 및 특검보 3명 정도에 지원인력 50명 정도, 사무실을 유지하고, 관리하는데 1개의 사건에 들어가는 돈이 약 50억원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면 특별검사보다 기구가 훨씬 커져서 특검보다 예산이 4배 정도 더 들 것으로 예상된다.
위와 같은 예산이 소요됨에도 반드시 제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살펴보면, 지금 세월호 침몰사건은 여객선 불법개조, 화물 과적 및 고정조치 미이행, 조타수의 급조향, 침몰 시 선장의 무책임한 안내방송, 해경의 안이한 구조방법, 재난 컨트롤 시스템의 작동미비 등 진상이 나올 것은 다 나왔다. 형사적으로 책임질 사람은 지금 1심 재판 중이다. 후속조치로 국회 차원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세월호 조사보고서를 만들어 후세의 교훈으로 삼으면 된다.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그래도 조사해야 할 대상이 광범위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는 단 1회의 침몰사건이다. 그 조사범위를 세월호 이외의 다중인명시설에 의한 사고로 확대한다면 기존 사법기관의 영역과 중복이 된다.
피해자를 진상조사위원회에 참석시키는 것까지는 용인된다고 하더라도, 조사위원회에 기소권을 주는 방안은 사소추를 금지하는 우리나라 형사법의 대원칙에 반한다. 과거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에서도 고발권만 부여하였지 소추권을 부여하진 않았다. 피해자가 조사위원으로 있는 데서 진상을 객관적으로 조사하여 기소하기는 어렵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조사위원이 되어야 한다.
그 외 기념관 건립, 보상지원, 의료지원, 특례입학은 기존 법의 테두리에서도 가능하다. 세월호 사고는 국가적 대재난이고, 이를 예방하는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정파에 따른 정치공세로 돼서는 곤란하다. 여야 합의로 합리적 방안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황현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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