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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광복까지 항일로 일관한 천도교 지도자 김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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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규합,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제작, 인쇄하여 이를 조선 전체에 배부하여 민중을 선동하고,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조선독립 청원서를 송부하는 일을 모의 실행하였으며, 선언서를 비밀리에 작성 배부하고 선언식을 거행, 민중을 선동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1920년 경성복심법원은 1919년 3'1 독립선언식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석한 천도교 지도자 송암(松巖) 김완규(金完圭'1876~1949)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을 위한 첫 먹구름인 강화도 불평등 조약이 강제로 체결되던 해에 태어나 일제 속박을 벗어나자마자 생을 마쳤으니 평생 암흑의 세월 속에서 살았던 셈이다. 조선 관리로 지내다 나라를 잃은 해(1910년)에 천도교에 입도했고 '천도교회월보' 발행인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나라를 잃자 천도교 중앙간부 이종린(李鍾麟) 등과 함께 한일 강제 병탄 반대운동을 벌이다 1910년 오늘 일본 헌병에 체포돼 곤욕을 치렀다. 또 1919년 2월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孫秉熙)를 비롯, 권동진(權東鎭) 오세창(吳世昌) 등 천도교 지도자들로부터 독립만세운동 계획을 듣고 동참했다. 그해 3월 1일 태화관에서 열린 독립선언식에 참석했다 검거돼 2년의 옥살이를 했으나 종교활동과 항일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광복 후엔 우익계의 반탁운동 단체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결성에 참여해 재정부장을 맡기도 했으나 곧 병사(病死)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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