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도로 위의 약자다. 덩치가 어른보다 작아서 운전자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신호나 횡단보도를 무시하는 돌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크다. 그럼에도 운전자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조차 불법 주'정차를 하거나 제한속도를 넘어 운행하는 등 어린이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다행히 매년 어린이 교통사고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어린이가 차에 치여 죽거나 다치고 있다. 대구에서 일어난 어린이 교통사고의 실태와 문제점, 사고 예방 대책 등을 짚어봤다.
◆학교 앞이 가장 위험
22일 오후 2시 30분 대구 달서구 상인동 월서초등학교 앞 월배로 39길. 방학인데도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북적였고, 분주하게 정문을 오가는 어린이들도 눈에 띄었다. 학교 정문과 바로 옆 아파트를 잇는 횡단보도가 있었지만 신호등은 없었다. 학교 주변에 있는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수시로 도로를 건넜다.
학교 주변 담을 따라 주차금지 표지가 있었지만, 차들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줄지어 서 있었다. 인근 가게에 들른 한 주류 배달 1t 화물차는 10여 분 넘게 그곳에 서 있었다. 학원 가방을 든 어린이들은 주'정차된 차 사이를 걸었고, 반대편에서 오는 차들은 도로변 불법주차 탓에 중앙선을 넘어 운행하는 일이 잦았다. 어린이들은 학교 주변 도로를 운동장처럼 뛰어다녔고, 이에 차들은 속도를 높였다 낮춰다 하면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을 지났다.
어린이와 차들이 위험하게 오가는 월서초교 앞의 중앙선 없는 골목길에서 지난해 2월 22일 오후 4시쯤 횡단보도를 건너던 5살 여자 어린이가 승용차에 치였다. 가해차량은 e-편한세상 아파트 쪽에서 달서구 본리동 쪽으로 차를 몰던 중 앞을 제대로 보지 않아 사고를 냈다. 피해 어린이는 차량 진행방향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건너던 중이었고 앞범퍼에 부딪혔다.
몇십m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같은 해 8월 14일 오후 5시쯤에도 7살 남자 어린이가 차와 충돌했다. 어린이는 조암남로에서 월서초교 방면으로 걷고 있었고 승용차 한 대가 지나면서 왼쪽 앞바퀴로 왼쪽 발을 치었다.
지난해 1년 동안 월서초교 반경 200m 안에서 길을 걷던 어린이가 차에 치인 사고는 4건이었다. 월서초교를 포함해 도로교통공단이 밝힌 지난해 대구의 보행어린이 교통사고 다발지역(이하 어린이사고지역)은 모두 7곳(발생사고 22건). 한 해 반경 200m 이내에서 어린이(13세 미만) 교통사고가 3건 이상(사망사고 포함 시 2건 이상) 일어난 곳이다.
어린이사고지역은 달서구가 3곳으로 가장 많고, 서구와 북구, 남구, 수성구 등이 각각 1곳이다. 이들 지역 가운데 6곳은 초등학교를 끼고 있었다.
사고는 등'하교 시간에 집중됐다. 지난해 어린이 사고 22건 중 59.1%인 13건이 하교 시간인 오후 2~5시에 발생했고, 등교하는 오전 8시대에도 2건이나 사고가 났다.
◆사고로부터 어린이 지키기
정부는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고자 초등학교와 어린이집, 유치원의 정문 300m 이내 주 통학로를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대구 지역 어린이보호구역은 모두 573곳이다. 이 중 초교가 219곳이고, 유치원 182곳, 보육시설 163곳 등이다.
이 구역에는 제한 조치가 있다. 자동차 운전자는 30㎞/h 이내로 통행하고, 어린이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정문과 직접 연결된 도로에는 노상 주차장을 설치할 수 없고, 이미 설치된 노상 주차장은 폐지하거나 이전해야 한다. 차량의 주'정차도 전면 금지된다.
문제는 이런 제한 조치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어린이보호구역 법규 위반은 2만6천843건에 달했다. 이는 전년도 1천461건의 18배에 이른다. 올해도 7월 말까지 어린이보호구역 내 법규 위반이 8천769건이나 된다. 특히 제한속도 위반은 올해 7월 1천361건으로, 벌써 지난해 전체 위반 건수(947건)를 넘어섰다.
이는 경찰이 안전한 통학로 확보를 위해 집중 단속을 벌인 결과로, 여전히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속도와 신호, 주'정차 등 기본적인 법규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실태를 보여준다.
대구시는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려 시설 개선부터 안전교육까지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시는 올해 9억1천200만원(23곳)을 투입, 어린이 통학로 주변에 보도와 방호울타리, 미끄럼방지와 과속방지 시설, 보호구역표지판 등을 설치할 계획이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537억8천300만원을 들여 어린이보호구역 497곳을 정비한 바 있다.
어린이 교통랜드(1천504㎡)를 통해 체험 위주의 눈높이 교육도 마련했다. 올해에만 어린이 3만5천 명이 전시관과 영상관, 도로주행 체험 등을 통해 교통안전을 몸소 익히게 된다. 더불어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와 함께 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교통사고 예방과 안전운전 교육을 벌이고 있다.
김정래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 안전조사검사부 교수는 "학교 주변 도로에 대한 시설 투자와 교육 등을 통해 어린이 교통사고는 감소 추세다"며 "등'하교 시간 학교는 물론 어린이의 왕래가 잦은 학원 주변까지 포함해 안전운전 캠페인 활동을 벌인다면 사고를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차상은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시민안전연구소장은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려면 질서와 나눔, 배려 교육이 필요하다"며 "나아가 어린이가 교통질서를 위반하면 부모에게 과태료 등 책임을 묻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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