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웃음과 희망 전도사로 통했던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가 최근 목숨을 끊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에서 장밋빛 미래를 위해 책과 씨름하는 학생들에게 인생의 참뜻을 따뜻하게 조언했던 키팅 선생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외치며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현재를 즐기라던 '오 캡틴! 마이 캡틴!'이 끝내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간 것이다.
최근 제주에서는 현직 검사장이 '길거리 음란행위'의 현행범으로 지목되어 경찰서 유치장에서 밤새 구금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검사 스폰서,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은 검사, 법무부 차관의 성 접대 의혹,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 등의 사건 등과 결부시켜 마치 검찰 조직상의 비리처럼 비난하기도 한다. 문제의 본질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공격과 비난부터 일삼고, 정작 자신이 조금이라도 지적을 받으면 살인이라도 할 듯이 과잉반응을 하며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의 병든 모습을 보는 듯하여 씁쓸함이 앞선다. 검사 스폰서 사건이나 성 접대 의혹 사건은 권력기관의 구조적인 문제지만, 나머지 사건들은 '성'이라는 매개체가 아니라면 같은 고리에서 연결할 수 없는 개인적인 사건이나 비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우울증이나 불안증은 10명 중 1명꼴로 평생에 한 번쯤은 겪는다는 정신질환이다. 우울증은 착실한 사람, 완벽주의자, 그리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에게 쉽게 찾아온다. 우울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자해나 자살과 같은 자신을 벌주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해서, 정신과학자들은 그것을 '내면을 향해 총구를 돌린 공격성'이라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성충동 조절장애도 부도덕하거나 양심이 없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목표의식이 높은 사람이 목표 달성 후에 느끼는 극도의 공허감과 긴장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에서 맷 데이먼(Matt Damon)은 감정의 변덕이 심하고 충동조절이 안 되며 자아가 약하고 방어본능이 강하여 대인관계가 어려운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로 나온다. 그의 심리치료를 하던 정신과 의사 로빈은 그에게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명대사를 건넨다. 그 말 한마디에 오만방자했던 문제투성이의 청년이 처음으로 모든 방어본능을 해제하고 뜨거운 위안의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그 원인이 있고 현대의학으로 조절 가능하고 치유될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부인하고 방치하며 치료에 소홀해지는 것은 사회적 편견에서 기인하는 면이 크다.
경찰청은 얼마 전에 경찰관 임용 시 정신병력을 확인하고 심층면접으로 가려내겠다고 했다.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정신분열'조울병'우울병 등 89개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 경력을 통보받아, 면접에서 선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면접을 통하여 적합 여부를 판정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진료 기록을 통보받아 정신병력을 확인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위험한 발상이고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 이는 치료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불이익을 줄 수 있고, 정신질환을 더욱 숨기고 치료를 꺼리게 할 염려가 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정신병력자에 대한 폭력행위가 될 수 있으며, 다른 직종으로 미칠까 우려된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개인의 정신병력이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사회적인 편견과 사회가 나르시시스틱(Narcissistic, 자기도취적)화되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도취적 존재일 수밖에 없기에 편견이나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적인 이슈를 접하면서 비난부터 일삼는 것은 폭력이고, 어쩌면 지능적인 사이코패스에 가깝다. 우울증이나 불안증과 달리 사이코패스는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는 것이기에 사회적 위험성이 더 크다. 나의 문제조차도 남 탓으로 돌리는 공격성이 만연할 때, 우리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이석화/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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