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선후배 모임에서 사오십대 남녀 열다섯이 모였는데 셋이 부모님을 모시고 있었다. 셋 모두 주간보호시설이나 방문요양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귀국한 중학교 동창은 혼자 한국에서 살고 계신 어머니의 장기요양 등급신청을 하느라 체류기간 내내 분주했다. 결국 등급은 받지 못했지만 지역복지관에 연락해 독거노인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며 가까스로 안심하고 돌아갔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된 지 어느새 7년. 올 6월 기준으로 장기요양서비스를 신청한 사람은 노인 인구의 약 11%, 70만 명을 넘겼다. 실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약 35만 명에 달한다. 시설서비스를 이용하는 노인이 약 12만 명이다. 나머지 약 24만 명이 재가서비스, 즉 집으로 찾아오는 요양보호사로부터 서비스를 받거나 인근의 주간보호시설 등을 이용하고 있다. 정부가 7월부터 치매특별등급을 새로 도입하면서 약 5만 명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 했으니 재가서비스를 이용하는 노인은 더 증가할 것이다.
기력이 떨어져 일상생활을 온전히 해내기 어렵게 되었다면 무조건 '시설'로 가야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빈곤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사회학자 타운젠드는 1955년 영국의 노인시설들을 방문하고 열악한 상태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173개 노인시설을 직접 방문 조사한 연구를 '마지막 피난처'(The Last Refuge)라는 책으로 펴내면서 '복지국가에 노인시설이 과연 필요한가?'라고 문제 제기를 했다. 이 책은 1960, 70년대 반(反)시설 연구를 이끌었고 이후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서비스를 강조하는 영국의 커뮤니티케어 정책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던 자리에서 살던 방식 그대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은 영국의 커뮤니티케어 정책이나 미국의 '살던 곳에서 나이 들기'(aging in place) 개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에서 노인장기요양, 노인돌봄서비스 정책의 중심이 재가서비스로 옮겨온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이 정책은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노인(사실, 노인만이 아니라 혼자서 독립적인 일상생활이 어려운 장애인 등 모두를 포함한다)에게 필요한 다양한 재택서비스와 이용시설들의 발달을 필요로 한다.
이 필요성은 우리나라 노인들이 누구와 같이 살고 있는지만 살펴보아도 명백해진다. 2011년 전국노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전체 노인 중 단지 약 27%만이 자녀와 같이 살고 있다. 19.6%의 65세 이상 노인이 혼자 살고 있으며 노인부부 가구가 전체의 48.5%를 차지한다. 약 70%의 노인이 혼자 살거나 노인 배우자와 살고 있는 것이다. 자식으로부터 부양과 수발을 받기 위해서는 같이 살아야 하는데, 3분의 1도 안 되는 노인들만이 그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게다가 자녀와 같이 살기를 원하는 노인은 약 27%에 불과했다.
혼자 일상생활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을 때, 자신을 돌봐줄 누군가가 없으면 당장 생활이 곤란해진다. 이제 가족 중 누군가가 항상 집에서 다른 가족을 보살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인 제도로부터 누구나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생계보장에 버금가는 사회안전망이 된다. 재가서비스를 탄탄하게 구축하는 것은 사회구성원이 어떤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자신이 살던 그 지역에서 자신의 생활과 관계를 그대로 유지할 권리를 보장한다.
더군다나 고령화가 가속화될 우리 사회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재가서비스를 탄탄하게 구축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진다. 현재 요양과 간호와 목욕으로 구분되는 방문서비스의 종류도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신체지원, 생활지원, 정서지원으로 뭉뚱그려진 '방문요양'의 범위에도 분화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본 중의 기본인 식사와 청소를 지역사회에서 효과적으로 공급하는 데도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지원하는 재가서비스 중 약 30~40%가 사실상 가족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가족돌봄의 한계로부터 출발한 사회적 돌봄제도가 다시 가족돌봄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양난주/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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