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갓바위~환성산~초례봉' 한적한 솔숲서 빠져드는 '나와의 데이트'

팔공산 동부능선 약 17km

갓바위~초례봉 코스는 복잡한 인파를 피해 한적하게 걷기에 좋다. 40리가 넘는 장거리 산행인 탓에 초급자나 노약자는 일찍 집을 나서 시간을 여유 있게 잡는 게 좋다. 명마봉 쪽에서 바라본 갓바위 풍경.
갓바위~초례봉 코스는 복잡한 인파를 피해 한적하게 걷기에 좋다. 40리가 넘는 장거리 산행인 탓에 초급자나 노약자는 일찍 집을 나서 시간을 여유 있게 잡는 게 좋다. 명마봉 쪽에서 바라본 갓바위 풍경.
1.초례봉 낙탕봉 능선 2.명마산(장군봉) 3.꿩의다리 4.어수리
1.초례봉 낙탕봉 능선 2.명마산(장군봉) 3.꿩의다리 4.어수리

긴~ 추석연휴, 모처럼 긴~ 종주 코스 나서볼까.

기름진 음식에 벨트 구멍이 한 칸이나 밀려나고 잦은 음주에 정신줄이 느슨해졌다면 지금 배낭을 꾸려보자.

아침마다 올랐던 동네 뒷산은 잠시 접어두자. 주말마다 올랐던 앞산 자락도 열외(列外)다.

오늘은 차 키도 내비게이션 안내양도 안식이다. 종주 코스들이 모두 대중교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오늘 추천 코스는 두 곳. 가팔환초(가산-팔공산-환성산-초례봉)의 숨은 비경 갓바위~환성산~초례봉 코스와 성삼비앞(성암산-삼성산-비슬산-앞산)의 노른자위 헐티재~비슬산~용연사 코스다.

길 나선 산꾼들을 긴 여운으로 인도할 대구의 명산, 비봉(秘峰)으로 출발해보자.

◆지역 등산 마니아들의 드림 코스=대구 산꾼들의 로망은 '가팔환초' 완등. 대구 동서를 가로질러 줄기를 뻗은 이 산줄기는 도상거리 37㎞, 실제 산행거리만도 45㎞에 이른다.

J3클럽 같은 '짐승' 수준의 산꾼들은 무박종주로 내달리기도 하지만 보통은 가산~동봉이나 동봉~갓바위 정도의 토막 종주로 아쉬움을 달랜다.

오늘 취재팀이 오르는 곳은 갓바위~환성산~초례봉으로 이어지는 약 17㎞. 동봉이나 치산계곡, 수태골의 명성에 가려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곳이다.

중간중간에 사찰, 유적지도 많고 잘 알려지지 않은 위인들의 일화와도 만날 수 있다.

산행의 시작은 갓바위. 과일, 채소를 파는 할머니들의 흥정소리가 들리면 갓바위 종점에 이르렀다는 신호다.

지금이야 등산로가 말끔히 정비돼 가드레일이 설치되고 데크까지 놓여 있지만 24, 25년 전만 해도 갓바위 오르는 길은 고단한 계단의 연속이었다.

길 양옆으로 순두부집들이 성시를 이루고 있었는데 다닥다닥 붙은 식당에서 순두부와 막걸리를 곁들여 먹던 즐거움은 당시 갓바위 산행의 빠질 수 없는 일상이었다.

최근 들어 갓바위 산행길에 동남아 여성들이 부쩍 눈에 띈다. 한국인 친구들과 삼삼오오 산을 오르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1천365개에 이른다는 계단에 다리가 뻐근할 무렵 갓바위 정상이 나타났다. 많은 기도 행렬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삼서근(麻三斤'참선 수행자들이 널리 채택하는 화두) 화두를 잡고 정진 중인 불자들이거나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모성의 행렬들일 것이다.

◆명마봉-능성재-환성산으로 연결=갓바위 기도 인파를 빠져나와 용주암 쪽으로 길을 잡아 나선다. 북적이던 행렬은 뚝 끊어지고 인파 소리도 잦아들었다. 이제야 들꽃들이 보이고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평탄한 종주길 산행은 평온하다. 넓게 분지를 이룬 능성동 쪽 풍경이 자꾸 시야를 간질인다. 호젓한 산길은 명마산(장군봉) 앞에서 쉼표를 찍는다. 옛날 김유신 장군이 여기서 수련을 할 때 백마 울음소리가 들려 명마(鳴馬)산이 되었다는데 신라의 최고 신분이었던 그가 대구 턱밑까지 왕래한 사연이 궁금하다.

명마산 바로 밑으로 환성산으로 향하는 하산로가 나있다, 산길을 잡아들어 1시간쯤 걸으면 909번 지방도로가 나오고 길가에 '종주꾼들의 쉼터' 우정식당이 보인다. 식당 주인 김부연(59) 씨는 "내일 예약된 종주꾼들 음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며 "가팔환초가 이젠 산꾼들에게 알려져 전국 마니아들의 순례코스가 되었다"고 말한다.

◆초례봉 정상 확 트인 조망 일품=우정식당 앞길을 건너면 바로 환성산권으로 접어든다. 행정구역도 바뀌어 표지판도 모두 동구(東區)로 바뀌어 있다. 지금까지 코스가 가벼운 트레킹 수준이었다면 본격 산행은 이제부터다. 경사가 심해 웬만한 건각들도 한참 용을 써야 정상석을 만날 수 있다. 중간에 간이의자가 있어 쉬어가기에 좋다.

강행군 끝에 환성산(811m) 정상에 다다른다. 팔공산 동부의 최고봉이다. 그러나 산맥의 중형(仲兄)급 치고는 정상석이 빈약하다. 정상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찍고 초례봉으로 나선다. 한참만에 봉우리는 새미기재(峙)로 뚝 떨어진다. 재는 임도를 펼쳐 놓고는 다시 초례봉 등로를 열어 놓는다.

종아리를 두드리며 1시간쯤 오르자 초례봉의 낙타봉 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기암과 노송, 암릉의 조화가 동봉 근처의 병풍바위나 칼바위 능선과 비교할 만하다.

누가 뭐래도 '환초 라인'에서 조망 압권은 단연 초례봉 정상이다. 사방이 막혀 별 볼 것이 없는 환성산에 비해 초례봉에선 하양읍내는 물론 경산 들녘까지 펼쳐진 멋진 실루엣을 감상할 수 있다.

◆송림 우거진 매여동 하산길=시계가 4, 5시쯤 이르렀다면 이제 하산을 서둘러야 한다. 백로(白露) 절기에 접어들며 해가 부쩍 짧아졌다. 5시면 하산로가 컴컴해진다.

하산길은 매여동으로 잡는다. 울창한 송림에 산길도 평탄해 걷기가 좋다. 희미한 길을 한참을 걸으니 매여동 상가가 나온다. 여기서 수성2번 버스를 기다리기로 한다.

'갓환초' 종주 코스는 초급자에게 약간 부담스러운 코스다. 40리 길 장거리 산행도 여성들에겐 무리다. 더구나 세 개(갓바위, 환성산, 초례봉)의 산을 타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동네 산에 비해 두세 배 체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모처럼 혼자 고즈넉한 산행에 빠져들고 싶다면 용기를 내볼 만하다.

장점도 많다. 인파와 소음에서 자유로워 한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고 야생화의 군무에 빠져들 수도 있다. 산길을 무음(無音)모드로 걷다 보면 어느새 내면으로 깊이 빠져들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빠져드는 '나와의 데이트'. 종주길 산꾼들의 든든한 자양이 돼줄 것이다.

글'사진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교통편=갓바위 노선은 401번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급행 1번을 타고 오다 팔공보성, 미대동이나 구암동에서 환승하면 된다. 명마산 밑 능성동에는 팔공2번이 다니므로 1차 탈출로로 잡으면 된다. 초례봉 밑자락 매여동에서는 수성2번이 운행된다. 배차 간격이 길다. 시간을 체크한 후 간단히 하산주를 즐기는 것도 좋다. 막차는 오후 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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