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전한 도로 행복한 교통문화] 도로위 약자에 대한 배려-노인(상)

교통사고 '장유유서'는 거꾸로…노인 사고 사망률 어린이 32배

11일 대구 달서구 월성동 월성공원 앞에서 어르신들이 횡단보도를 조심스럽게 건너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11일 대구 달서구 월성동 월성공원 앞에서 어르신들이 횡단보도를 조심스럽게 건너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 인구가 늘고, 덩달아 노인 보행자'운전자와 관련한 교통사고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감소하고 있는 전체 교통사고 추세와 반대 흐름이다. 노인은 신체'생리적 기능의 저하 때문에 교통사고 위험성이 청'장년층에 비해 높다. 지난해 대구에서만 교통사고로 노인 6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2명)의 32배나 되지만 사회적 관심은 오히려 부족한 편이다.

◆보행 노인 위협하는 도로

11일 오전 9시쯤 상가와 은행, 버스승강장 등이 도로를 끼고 늘어서 있는 대구 달서구 월성공원 부근 월성로. 머리가 하얗게 세고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들이 느린 걸음으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버스승강장에 가려고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차들은 횡단보도 부근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버스 3대가 승강장에 줄지어 정차하자, 옆 차로에서 뒤따라오던 차량의 운전자 시야에 보행자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맞은편 대구은행 월성동지점 앞 도로에는 불법 주'정차 차들이 1개 차로를 독차지했다. 이 때문에 버스가 도로 한가운데서 승객을 태우고 내렸다.

월성로 주변은 각종 기관이 들어서 있어 사람들로 붐비고, 특히 노인 보행자가 많은 곳이다. 달서구청과 월성종합사회복지관, 보건소, 경찰서, 소방서, 우체국 등이 반경 300m 안에 몰려 있고, 노인들이 운동을 즐기는 월성공원과 학산공원이 있다.

이곳 도로에서 지난해 6월 4일 오전 9시쯤 86세 남성이 승용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가해 차량은 월성파출소 쪽에서 달서소방서 방향으로 진행하면서 차로(1→2차로)를 바꾸던 중 앞을 제대로 보지 않아 사고를 일으켰다. 피해 노인은 신호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이었다.

100여m 떨어진 곳에서 같은 해 4월 4일 오후 6시쯤에도 69세 여성이 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2차로를 따라 운행하던 화물차가 왼쪽 사이드미러 부분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받아 중상을 입혔다. 이 피해자 역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이었다.

지난해 건도산업개발 반경 200m 안에서 보행 노인이 차량에 치이는 사고가 8건이나 발생했다. 이로 인해 1명이 목숨을 잃고, 4명이 중상을 입는 등 모두 8명이 죽거나 다쳤다. 건도산업개발 부근 월성로를 비롯해 도로교통공단이 밝힌 지난해 대구의 보행노인 교통사고 다발지역(반경 200m 이내 65세 이상 보행자 교통사고가 3건 이상)은 모두 36곳(발생사고 146건). 이는 지난해보다 지역과 발생건수가 24%(7곳)와 26%(30건) 늘어난 수치다. 이들 지역에서 모두 8명이 목숨을 잃고 86명이 중상을 입었다.

구별로 보면 서구가 9곳으로 가장 많고, 달서구가 8곳, 중구가 6곳, 동구와 북구가 각각 4곳으로 뒤를 이었다. 서구는 발생건수도 36건으로 가장 많고 사망 및 중상자 수도 26명이나 됐다. 이는 지난해 보행노인 교통사고가 35건 발생해 18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은 달서구보다 많은 수치다. 서구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2만7천 명으로 달서구(5만1천 명)의 절반 정도 수준인데도, 교통사고는 더 잦았다.

◆허술하고 부족한 노인보호구역

정부는 노인 교통사고를 줄이고자 2007년 5월 '노인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 노인보호구역을 지정하고 있다. 노인보호구역에는 차량통행 제한과 제한속도(30㎞/h) 설정을 비롯해 노인보호구역 표지판과 보행신호등, 과속방지턱 등의 설치가 이뤄지고 있다.

올해 8월 기준으로 대구에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22곳. 이 중 복지회관이 14곳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양로원 3곳, 요양원과 공원 각각 2곳, 노인대학 1곳 등이다. 문제는 시설개선을 끝낸 곳이 절반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지정된 노인보호구역 중 11곳만이 개선을 끝냈다. 6곳은 올해 안에 개선을 마칠 계획이고, 나머지 5곳은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노인보호구역의 수도 어린이보호구역(570여 곳)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의 인구 비중은 어린이(0~14세)가 약 15%이고, 노인(65세 이상)은 약 8%다. 노인 인구 비중이 어린이의 절반에 가깝지만, 노인보호구역은 어린이보호구역의 4% 수준에 머물고 있다. 또 노인보호구역은 노인복지회관과 경로당, 재활원, 요양원 등과 같이 시설 중심으로 지정돼 있어, 공원 등에 접근하는 도로에 대해선 별다른 조치가 없다.

전문가들은 "노인 교통안전을 위해 다각적인 투자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노인 보행자'운전자 등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을 활성화하고, 횡단보도 보행시간 연장과 횡단을 끝내지 못한 경우를 대비해 도로 중앙에 교통섬을 확대하는 등 횡단보도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노인은 움직이는 것이 불편해 육교를 이용하지 않고 무단횡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비해 육교의 경사로를 완화하고, 손잡이용 가드레일과 미끄럼 방지시설을 설치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더불어 야간 시력이 좋지 않은 노인을 위해 반사재 보급과 가로등 설치 확대, 야광 지팡이'조끼 배부 등도 고려해야 한다.

도로교통공단은 지난해 8월부터 노인운전자를 대상으로 무료 교통안전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을 이수하면 자동차 보험료 5%를 할인받을 수 있게 해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교육 참가자는 운전에 필요한 자신의 인지지각기능을 알 수 있도록 '인지지각검사'(CPAD)를 받는다.

김정래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 안전조사검사부 교수는 "노인 교통사고는 전혀 줄어들지 않지만, 관련 예산은 턱없이 부족해 시설 개선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취약계층 노인들이 폐지 수집 등 생계활동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도 교통 약자이고 지켜야 할 대상이라는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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