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갑자기 흡연자의 건강을 걱정하고 나섰습니다. 평균 2천500원 수준인 담배 가격을 내년 1월부터 2천원 인상하는 금연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요. 이와 함께 "금연 정책 예산을 대폭 늘려 금연 의지가 있는 흡연자를 돕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가격 인상으로 흡연 욕구를 통제하려는 정책, 정말 효용성이 있는 걸까요? 그리고 정말 흡연자의 건강이 걱정돼 담뱃값을 올리는 것일까요? 4천500원짜리 담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담뱃값 인상, 국민 건강 위한 것 맞나요?
직장인 이민수(30) 씨는 하루에 한 갑씩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입니다. 그가 피우는 담배는 말보로 플레이버 플러스. 한 갑에 2천700원입니다. 이 씨는 우리나라 경제 규모와 비교하면 담뱃값이 저렴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지만 정부의 이번 담뱃값 인상 정책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편의점에 갈 때마다 담배를 한 보루씩 삽니다. "정부가 흡연자의 건강을 걱정해서 담뱃값을 올린다고 말만 안 했어도 기분이 덜 나빴을 것 같다. 세수 증대가 목적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씨는 담배 가격과 흡연율의 상관관계를 직접 실험해본 사람입니다. 담배 한 갑에 1천원하는 필리핀에도 살아봤고, 8천~1만원하는 호주에서도 살아봤지만, 하루 담배 소비량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씨는 "정부 논리대로라면 담뱃값이 비싼 호주에서 나는 담배를 끊었어야 했다. 호주에서는 꽁초가 될 때까지 아껴 피웠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씨는 정부가 진짜 흡연자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담뱃값 인상분은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권리를 각각 보장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의식 있는 애연가인 이 씨는 다세대주택에서 살면서 비흡연자에게 피해를 주는 게 싫어서 실내 흡연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회사 건물, 술집, 길거리, 공원, 거의 모든 곳이 '금연구역'이 된 요즘 지정된 장소에 흡연실 몇 개는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담뱃값 인상으로 얻은 세금은 금연을 원하는 흡연자들을 위한 금연 클리닉, 흡연자들이 비흡연자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담배 피울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데 써야 해요. 담배 피우는 사람을 죄인처럼 취급하면서 정부는 흡연자의 권리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어요. 요즘 나한테 가장 큰 힘이 되는 게 담밴데, 정부가 왜 이 즐거움을 뺏으려는 겁니까?"
여기서 정부 의견을 살펴볼까요. 정부는 국민 전체의 건강을 위해 담배 가격 인상은 꼭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합니다. 가장 먼저 내세우는 자료는 우리나라 성인 남성들의 흡연율입니다. 19세 이상 성인 남성 흡연율이 43.7%로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라는 거죠. 흡연이 폐암의 주요 원인이라는 근거도 함께 내세웁니다. 또 "청소년들의 흡연을 막는 데도 가격 인상이 효과적인 조치며, 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서 담배의 수요'공급 감소를 위해 종합적(가격'비가격)인 담배규제 정책 도입을 권하고 있다"며 담뱃값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왜 하필 4천500원?
우리나라 담뱃값 인상 역사를 먼저 살펴볼까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올해 6월 발표한 보고서인 '담배과세의 효과와 재정'을 참고하겠습니다. 지난 25년간 담뱃값은 총 6차례 올랐습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인상은 2004년 12월, 2005년 1월 인상인데요. 2002년 1천500원으로 올랐던 담뱃값이 2004년 12월 2천원으로 올랐고요. 다음해인 2005년 2천500원으로 올라 흡연자들의 지갑을 얇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약 8년간 담뱃값은 2천500원 정도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담뱃값이 평균 4천500원이 되면 세수는 얼마나 증가하는 것일까요? 담뱃값 2천원 인상으로 얻을 수 있는 추가 세수는 약 2조7천억원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담배 가격대별 추가 세수' 그래프를 보면 담뱃값이 5천원일 때보다 4천500원일 때 추가 세금이 가장 많이 걷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5천원은 2조6천억원, 6천원은 1조6천억원, 7천원이 넘어서면 오히려 지금보다 들어오는 세금이 줄어듭니다. 7천500원은 2조2천억원이 줄고, 8천원은 4조원이 넘게 감소하네요. 왜 하필 담뱃값이 4천500원인지 이 자료를 보면 이해가 됩니다. 정부가 담배 가격을 4천500원으로 올린 뒤 물가에 따라 매년 올리겠다는 '물가연동제'를 내세운 것도 세수입의 최고점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입니다.
◆담뱃값 인상으로 얻은 세금, 목적에 맞게 사용돼야
이렇게 되면 담뱃값 인상의 목적이 세수 확보로 귀결됩니다. 현재 담배 한 갑에 포함된 세금부터 살펴봅시다. 담뱃세(641원), 지방교육세(321원), 부가가치세(321원) 등 3종의 조세와 폐기물부담금(7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354원) 2종의 부담금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특히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은 1997년 한 갑당 2원으로 도입됐다가 의료보험자 부담분이 폐지된 2002년부터 한 갑당 150원씩 인상했고, 2004년 12월과 2005년 1월 본격적인 담뱃값 인상으로 현재 갑당 354원이 부과되고 있습니다. 그 이름도 긴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은 건강보험료 지원과 보건 부문 지출을 담당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의 재원이 되고 있습니다. 흡연자들이 국민 건강에 이바지하는 셈이죠.
정부는 이번에 없던 세금을 만들어 담뱃값에 포함시켰습니다. 바로 '개별소비세'입니다. 정부의 발표대로 된다면 흡연자들은 4천500원짜리 담배를 살 때 한 갑당 594원의 개별소비세를 내게 됩니다. 이 세금은 사치품 같은 특정 물품이나 장소에 부과되는 소비세입니다. 담배가 사치품인가요. 보고서 '담배 과세의 효과와 재정'에는 '소득수준별 흡연율 추이'를 나타낸 표가 있습니다. 19세 이상 성인의 흡연율을 나타낸 것인데요. 2001년 소득 수준이 '하~중하'로 분류된 이들은 전체 흡연자의 56.6%입니다. 담배는 특정 계층만 구매하는 수입차 같은 고급 소비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담배에 개별소비세를 매기겠다고 주장한다면 설득력을 얻기 힘듭니다. 흡연자에서 비흡연자로 전향한 직장인 홍인기(28) 씨는 "국민건강을 위한다면서 왜 사치품에 붙이는 개별소비세까지 신설하는지, 왜 1만원 이상으로 담뱃값을 올리거나 공급을 줄일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며 "정부의 '꼼수'를 보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은 욕구가 솟구쳐 올라온다"고 말했습니다.
담배가 해롭고, 중독성이 강한 것이라면 당연히 판매를 먼저 규제해야겠지요.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남재일 교수는 담뱃값 인상 논쟁이 한창이었던 지난해 3월, 매일신문 '문화칼럼'에 '담뱃값 인상 법안의 이면'이라는 글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담뱃값 인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담배를 추방하는 그 순간까지 담배 자본의 이윤을 보장해 주면서 모든 부담을 흡연자에게 돌려놓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적어도 담뱃값 인상이 진정으로 흡연율 감소와 국민 건강을 위한 거라면 세금 대부분을 금연 사업과 흡연으로 인한 질환 치료에 사용해야 한다.(중략) 흡연율이 떨어지면, 그래서 흡연자의 건강이 개선되면, 서민 복지의 재원은 없어진다. 서민 복지의 재원이 유지되려면 흡연자가 계속 흡연해야 한다. 그러니 부자증세 대신 흡연자 호주머니를 털어 서민들에게 생색 내려 한다는 불만이 나오는 거다."
내년 복지부 총예산은 올해보다 10.7% 늘어난 51조9천억원입니다. 정부 전체 총지출 376조원의 13.8% 수준으로 부처 중에서는 세 번째로 많습니다. 늘어난 복지 예산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담뱃값으로 걷은 세금은 모호한 '국민건강'이 아니라 금연 사업과 흡연 관련 질환 치료에 명확하게 사용돼야 합니다.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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