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와 중국 등에서 가난과 압제를 피해 타일랜드, 라오스, 베트남 등 인근 나라의 국경을 무작정 넘은 사람들, 그중 많은 수가 타일랜드와 미얀마 국경을 따라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 수많은 마을을 이루며 오지 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명절 때가 되면 깎아지르는 산봉우리를 몇 개씩 넘어 국경선을 따라 널려 있는 초소들에 웃돈까지 바쳐가며 고향을 찾는 사람들. 그들은 혼례와 제례, 어린 시절 했던 놀이를 오롯이 간직하며 끈질기게 마지막 카렌의 전통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부족이다.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땡간(결혼)
비가 오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마을, 그러면 덩달아 느린 인터넷과 휴대폰마저도 되지 않는 오지. 문을 열어놓으면 날개 달린 조그만 사마귀, 날개 달린 개미, 작은 개미, 큰 개미, 긴발 거미, 큰 거미, 작은 거미, 귀뚜라미, 벌, 작은 나방, 큰 나방이 정신없이 들어온다. 종일 들리는 풀벌레의 관현악 소리는 덤이다. 저 아래 계곡 산길을 따라 버펄로들이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종일 풀을 뜯고, 방사한 돼지들도 천지를 돌아다니며 남의 집 마당에 예사로 들어간다.
지금 5월의 고국은 청보리밭의 눈부신 푸름과 라일락꽃의 향기가 천지에 진동할 텐데, 이곳도 꽃시절인 모양이다. 며칠 전에 한 쌍이 결혼을 하더니, 내일 또 한단다. 예식은 모두 신부집에서 주관하고 신랑은 하객들에게 먹일 돼지를 가져오는데, 그가 오랫동안 키운 것이다.
오전부터 그 집 앞으로 들어가는 길 하나를 아예 막아 버리고, 오바또(우리의 면사무소와 비슷)에서 빌려온 포장 아래 플라스틱 의자와 나무 탁자들이 길게 놓이며 오늘 밤 놀이를 위해 가라오케 장비도 같이 온다. 사립문 위에는 나쁜 기운이라도 못 들어오게 할 양인지 오늘 잡은 돼지고기를 걸어 두었다. 오래되어 녹이 슨 동그란 함석 아궁이 속에서는 장작불이 일렁이며, 위에 걸린 양은솥에는 퍽퍽, 수증기를 뽑아내며 돼지고기가 익고 있다. 사람들은 40도 독한 깔리양 위스키로 이른 낮술을 하며 마을의 경사를 흥겨워한다. 부엌 쪽에도 아낙들이 붐비고, 안쪽 방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찬송가를 부른다.
대부분 깔리양 마을들은 새로 생겨 왓(절)은 없고 산골짜기마다 교회들이 있으며 이따금 가톨릭 성당들도 한두 개 보인다. 어느 곳이나 교회는 앞에 커다란 무대를 갖추고 예배 중간중간 악기들을 연주하며 박수 치고 노래를 한다. 끝나면 먹을 것도 주고 아이들 공부까지 가르쳐 주니 남의 나라에 들어와 사는 이민족들에게는 크나큰 힘이 될 것이다.
쑤찬의 앞집에 사는 신부의 엄마는 그의 집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아직 인근 도시에 있는 매싸리앙 고등학교에 다니는 유난히 키가 크고 빼빼 마른 17세 딸은 포장 아래에서 동네 소녀들과 어울려 풍선들로 예쁘게 치장을 하고 있다. 무엇이 바빠서인지, 아니면 그들의 전통인지 이렇게 이른 결혼을 한다. 신랑은 지척에 있는 몽족 마을 27세의 학교 교사이다. 잘생기고 축구를 잘하는 소녀의 오빠는 19세로 치앙마이에서 대학을 다닌다. 일반적으로 깔리양족은 키가 크고 미인형이며, 몽족은 키가 작고 동그란 체형에 엉덩이가 크다. 둘째 딸은 16세이며 셋째 딸은 14세이고, 아빠는 43세, 엄마는 38세이며 키가 크다.
처마를 내린 평상 위에서는 피가 벌겋게 밴 포장 위에서 고기를 손질하고, 피가 잔뜩 말라 붙어 있는 도마 위에 야채 양념 등을 썰어 그대로 먹는다. 술잔 하나와 수저 하나를 돌리며 생고기를 즐겨 먹는데, 기생충 감염이라도 없을지 걱정스러운 것은 이방인만의 기우일까. 다음 사람이 옆에 와 앉더니 역시 그렇게 먹는다. 근처 람빵이라는 도시에 있는 랏차팟 대학에 다니며 나를 만나면 서툰 영어로 인사를 잘 하던 명랑하고 키가 작은 26세의 처녀가 환한 얼굴로 다가온다.
아궁이 아래 장작불 위에는 술안주가 급한 남정네들이 고기를 굽고 사내들은 독한 위스키를 원샷하며 연신 술잔이 돈다. 흙으로 만든 조그만 아궁이 위에서도 연신 고기를 볶아낸다. 행사는 저녁부터 시작되는지 손님들이 와도 밥은 따로 주지 않는다. 나무 울타리 밑에는 붉은 피부에 흰털을 가진 돼지 한 마리가 누워 있는데, 마치 서양인의 피부를 본 듯하다. 작열하는 뙤약볕 아래 물기가 약간 배어 나오는 흙 위에 누워 건드려봐도 꿈적하지 않는다.
고국에서는 사태가 나고 한 달여가 지나간다. 유족들 마음은 에서 타들어 가고 있는데, 국가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 말고 옷을 입은 동물이 없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말이다
두 손으로 꼬옥 얼굴을 가린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성이 되면/ 자기 합리화가 극단이 되면
그것마저 잊어버린다/ 오히려 상대만을 탓하게 된다
무서운 일이다/ 세상에는 그런 일이/ 또 얼마나 많은가 //
세월이 가면 잊혀질 것이다/ 그러나 옹이처럼
너무 깊이 박혀버리면/ 하나가 되고 만다/ 죽어서도 잊지 못한다//
결국은 한 몸이 되어/ 누군가를 미워하게 된다
그 설운 목소리들은 우주를 돌아/ 누군가의 하늘 위에서 뇌성이 될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먼저/ 무너질 것이다
스스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모래 위 바벨탑처럼
세월호/윤재훈
윤재훈(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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