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실종상태인 세월호 침몰 참사는 '특별한' 사건이다. 사상 최대의 인명피해를 냈다는 점에서 특별하고, 사망'실종자 가족이 그 긴 시간 동안 피붙이가 수장되는 장면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하는 극한의 고통을 받았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며, 참사가 정부의 총제적 무능과 부패의 결과라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그래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하게' 다뤄야 한다는 데에 국민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동의의 대전제는 법과 원칙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특별하게 다루되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작동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러한 동의의 바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과 이들의 무리한 요구에 스스로 포로가 된 새정치민주연합, 욕을 먹더라도 중심을 지켜야 할 새누리당 모두 이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특별법 협상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칙을 무시하고 내달린, 억지와 편법의 기록이었다. 이는 남기지 말았어야 할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우리 사회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라는 요구는 애초부터 실현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다. 현대 형법체계의 근간인 '피해자 자력 구제 배제'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가족의 억울하고 원통한 심경을 이해한다 해도 사법원칙에 예외를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예외의 연속으로 이어져 종국에는 피해자가 검경의 수사를 못 믿겠다고 하면 그때마다 자력구제를 보장해줘야 하는 사태로 가는 길을 열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진상조사위에 수사'기소권을 주는 것은 유가족이 아닌 조사위의 법률가에게 수사'기소권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자력구제나 사인소추(私人訴追)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틀렸다. 진상조사위원 중 3명은 유가족이 추천한다. 이는 진상조사위가 수사'기소권을 갖게 되면 유가족은 위원 추천이란 방식으로 수사'기소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간접적이지만 자력구제가 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법률로 자력구제 배제 원칙을 깨는 꼴이 된다.
새정치연합은 이를 모르는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체했는지 이러한 유가족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새정치연합이 수권(受權)을 해서는 안될 이유의 하나를 보여준 셈이다. 이것도 실소를 자아내지만 더 웃기는 것은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협상에서는 수사'기소권을 주지 않기로 합의해놓고 당내 강경파의 반발에 부딪히자 협상을 파기하고 '세월호 유가족이 요구하는 대로'를 외쳤다는 사실이다. 얄팍하기 짝이 없는 기회주의적 처신이었다.
최종 협상결과는 더 한심하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합작해 상설특검법을 무력화한 것이다. 양당은 특검 후보 4명을 특검법상의 특검추천위원회에 제시하기로 합의했다. 특검법 어디에도 이런 규정은 없다. 특검법상 여야의 권한은 특검 후보가 아니라 특검추천위원을 2명씩 추천하는 것이다. 결국 특검추천위의 특검 후보 선정 권한을 여야가 가로챈 것이다. 그렇게도 형사법체계 원칙을 강조했던 새누리당이 이런 반칙에 동의한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세월호특별법상 진상조사위에 부여된 동행명령권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8년 'BBK특검법'의 '참고인 동행명령' 조항에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법관의 영장에 의하지 않은 동행명령권에 응하지 않을 경우 벌금형을 부과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란 것이다. 그래서 새정치연합은 동행명령에 응하지 않을 경우 벌금이 아니라 과태료를 부과하자고 하지만 그런 꼼수에 헌재가 넘어갈지 의문이다. 이 조항을 손질하지 않는다면 결국 세월호특별법은 처음부터 위헌소지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 사회의 지력(知力)의 왜소함을 폭로한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는 이것밖에 안 되는가'하는 절망감을 줬다면 유족과 야당 그리고 동조세력의 '세월호특별법 투쟁'은 그런 절망감을 재확인해주었다. 우리를 더욱 절망케 하는 것은 이런 얘기를 하면 보수로 찍히고 수구로 매도당하는 현실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유족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몰인정으로, 유족과 야당의 무리수를 지적하는 것이 '패륜'으로 지탄을 받는다. 참담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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