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5월 대구 계명대 성서캠퍼스 인근에 문을 연 음료전문점 'MASIGARY'(마시그래이). 이 브랜드는 가격에 비해 양이 많다는 장점과 더불어 독특한 이름 덕분에 짧은 기간 고정 고객을 모았다. 이 업체는 최근 대구 중구 동성로와 수성구 범어동에 체인점도 냈다. 정영주(36) 대표는 "커피와 에이드 등 다양한 음료를 취급한다는 인상을 주고자 '마시그래이'(마셔라) 라는 이름을 내걸었다"며 "지역민들이나 경상도 출신 손님들은 몇 번 읽어 보고는 의미를 알고 재밌어한다. 다른 지역 사람이나 외국인에게도 뜻을 설명해주면 꼭 영어 단어 같다며 신기해한다"고 했다.
사투리 전성시대다. 최근 들어 학계는 물론이고 각종 상품과 상점, 서비스업 등에서 사투리를 쓰는 일이 늘었다. 전문가들은 "사투리를 쓰면 쓸수록 우리 옛말과 지역 문화의 수명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국립국어원은 사투리에 대한 관심을 끌고자 2012년 '사투리 상품 아이디어 공모전'의 문을 열었다. 첫해 86명이 출품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152점, 올해 206점 등 응모작이 꾸준히 늘었다. 올해 대상작에는 이수진 씨가 개발한 'NFC(근거리 무선통신) 관광정보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이 뽑혔다. 관광객이 스마트폰을 관광지 안내판에 갖다대면 스마트폰이 이를 인식해 그 지역 사투리로 안내해주는 제품이다. 이 씨는 "외국에 가면 그 나라 말을 통해 여행 중이라는 것을 실감하듯이 지역 사투리를 들으며 정취를 느낄 것으로 생각해 이 상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상점 간판에서도 사투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중구 동인동 카페 '오가메'(오며가며), 동구 신천동 분식점 '비무라(베어 먹어라) 떡볶이' 등이 손님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대구가 고향인 회사원 최모(37) 씨는 "서울의 회사 주변에서 경상도 사투리 간판을 보고 식당에 들어가면 같은 고향 출신 주인이 서비스로 음식을 더 주곤 해 정을 느낀 적이 많다"고 했다.
표준어만 구사하던 항공기 승무원 안내에도 사투리가 등장했다. 제주항공의 한 승무원은 4일 태국 방콕에서 김해공항으로 오는 7C2252편 항공기에서 "만석이네예. 덕분에 제 월급도 문제없이 받을 수 있겠네예. 제가 원래 고향이 대구거든예. 그런데 입사하니까 다들 서울 지지바, 머스마들이라 사투리를 몬 알아듣더라고예"라며 기내방송을 한 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 승무원은 "적극적인 협조 부탁드립니데이"라며 안내를 마쳐 승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처럼 사투리 사용이 늘기 시작한 것은 지역 언어에 대한 자긍심과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덕호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2000년대까지만 해도 사투리는 그 지역에 대한 고정관념을 대변한 탓에 이를 부끄러워한 사람이 많았다"며 "그러나 최근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등에서 주인공들이 사투리를 통해 개성을 뽐내자 사투리에 매력을 느끼는 이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은 "사투리는 옛 고유어의 흔적과 그 지역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선 영어권 국가나 수도권 따라잡기에 급급해 지역 고유 어휘가 사라지고 있는 반면 외국에선 사투리 연구를 통해 고유어를 되살리고 이를 복수표준어로 인정하기도 한다. 우리 말글을 풍성하게 가꾸기 위해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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