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채만식의 '어리석은 삼촌'과 궤변 소년

채만식
채만식

우리 소설 최고의 궤변 소년을 꼽으라면 단연 채만식 '치숙'(1938)의 주인공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치숙'의 주인공 소년이 내뱉는 발칙한 말들은 얼핏 들으면 모두가 지당하신 말씀이다. "타고난 복이 없고 게으른 인간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 공평천리"이므로, 부의 공평한 분배라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라는 것이 이제 열일곱, 여덟밖에 안 된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이 소년은 세상모르는 어리석은 삼촌(치숙)이 선택한 사회주의를 가장 싫어한다. 이 소년이 추구하는 삶이라는 것은 그 기이한 논리만큼이나 발칙하다. 돈을 많이 벌어 일본 여자와 결혼해서 일본식 이름을 가지고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사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물론 2010년대의 감각을 가지고 본다면 이 소년은 당연히 친일파이며 매국노이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이 그처럼 단순하게 규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친일파로 매도하기에는 이 소년의 감각이 너무나 일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소년은 대중잡지 '낑구'의 애독자이다. '낑구'는 영어 킹(King)의 일본어 표현으로 대량인쇄, 대량 판매의 출판 혁명을 일으키며 1925년 일본에서 발행된 종합대중잡지이다. 발행 이후 곧 100만 부 판매를 달성한 이 잡지의 최대 외국 시장은 조선이었다. 그래서 이 잡지에는 조선 독자들이 보내온 독자소식이 심심찮게 잡지에 게재되곤 했다. '치숙'의 발칙한 소년 역시 그 수많은 조선인 독자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가격이 비싸서 철이 지난 과월호를 사서 읽으면서까지 이 발칙한 소년이 '낑구'를 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컬러 화보가 많고, 어려운 한문에 토를 달아 놓아 읽기 쉬운데다가 무엇보다 내용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조선잡지나 조선신문, 소설을 싫어하는 이유도 단순하다. 한문이 섞여 있어서 읽기 어려운데다가 무엇보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당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야담' 잡지의 매달 판매 부수가 1만 부를 넘지 못했다는 것을 보면, 이 소년을 탓할 수만도 없을 것이다.

이 발칙한 소년의 문화적 감각은 이미 너무나 일본화되어 있어서 '민족'이라는 고리타분한 단어가 들어갈 틈이 전혀 없다. '낑구' 잡지의 화려한 채색화보, 일본 대중작가 '기꾸지깡'(菊池寬)의 감칠맛 나는 소설. 이 현란한 일본 대중문화에 매료되면서, 이 소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국적불명의 상태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제국 일본의 힘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문화에 점령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치숙'이 발표된 1938년은 이미 일본어 사용이 상용화되어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 책, 일본 신문을 구독하고 있던 때였다.

'치숙'이 나온 지 80년도 더 지난 지금, 이 발칙한 소년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고단샤에서 발행한 '낑구' 잡지 대신에 이제 그들은 고단샤에서 발행한 일본 만화책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몰두해있다. 그런 그들에게 일본어는 여전히 모국어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친근한 언어이다. 후쿠시마의 방사능에 잠시 멈칫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일본은 여전히 가장 방문하고 싶은 땅이다. 문화가 지닌 이 거대한 힘을 채만식은 예견했던 것일까.

정혜영 대구대 기초교육원 강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