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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저녁이 있는 삶과 밥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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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담임을 오래 하고 있는데다, 이런저런 문제 출제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가는 날이 많다. 하루는 모처럼 일찍 집에 갔더니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가 나를 보고 그랬다.

"아빠, 요즘 바람 피워?"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는 한편으로 얼마나 팍팍하게 살았으며, 얼마나 아이들과 대화가 없었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빠들은 아빠들대로,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모두가 삶이 팍팍하고 힘들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고문이 외쳤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는 참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그리고 막말들이 난무하는 우리나라 정치계에서는 보기 힘든 고상하고 품격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그분은 지역 주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낙선했을까? 경기도에 있는 선생님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한결같은 대답이 너무 순진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나 어울릴 법한 큰 주제를 국회의원 선거에 들고 나온 것이 그렇고, 사람들의 눈은 '밥그릇'에 있는데, 너무 높은 이상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렇다는 것이다.

어떤 집단들이 이익을 놓고 충돌하는 것에 대해 신문들이 보도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밥그릇 싸움'이라는 것이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말로 규정되면 이익 싸움을 하는 당사자들은 극심한 이기주의에 빠진 한심한 사람들로 전락한다. 공무원들에게는 '철밥그릇'이라는 딱지만 붙이면 그들을 마음껏 비난할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그릇'에 연연하는 것은 매우 천한 것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막상 그 이익 싸움의 당사자가 되면 '밥그릇'은 생존의 문제이다. 경기도 선생님들의 말처럼 깨 놓고 말해서 '밥그릇'만큼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는가? 가장들에게 저녁이 없는 이유는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투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저녁이 없는 이유는 더 크고 튼튼한 '밥그릇'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대학에 학문을 연마하기 위해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밥그릇'에 집착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저녁이 있는 삶'과 '밥그릇'의 어감은 천지차이지만 '저녁이 있는 삶'도 따지고 보면 '밥그릇'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려면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고민보다 '밥그릇'을 분배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선출직, 정무직 공무원들이 일반 국민들과 공무원들에게 '밥그릇'을 내놓으라고 하려면 적어도 자신들에게 너무 많이 주어진 급여나 연금과 같은 특별한 '밥그릇'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염치는 있어야 한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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