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수(62) 의성군수는 농업 분야에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농림부 차관 등을 거친 우리나라 농업분야 최고 전문가다. 공직을 떠난 뒤 서울시 농수산물공사 사장, 한국단미사료협회 회장 등을 통해 CEO로서 능력도 인정받았다. 그는 고향 친구이자 초등학교'중학교 동기 동창인 우동기(62) 대구시 교육감을 인생 최고의 멘토로 꼽는다.
김 군수가 친구인 우 교육감을 가장 존경하는 이유는 리더십과 창의성이 뛰어난데다 두둑한 배짱까지 지닌 적극적인 성격 때문이란다. 김 군수는 "오늘이 있기까지 우 교육감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좋은 친구를 인생의 멘토로 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학창 시절
김주수 의성군수는 초'중학교 시절에는 어머니와 함께 안계면 교촌리에서 살았다. 형들은 대구 등지에 살았다. 이 무렵 김 군수와 우 교육감은 교촌초등학교와 안계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두 사람 모두 공부는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김 군수도 공부는 잘했으나, 소극적인 성격 탓에 학생들의 리더인 학생회장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반면 우 교육감은 중학교 때부터 학생회장 등 하고자 마음먹은 모든 것은 꼭 이루고야 마는 용기와 뚝심, 근성을 갖춘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김 군수는 "우 교육감은 학창 시절 항상 넉넉한 마음과 매사에 여유 있는 생각으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이 같은 친구의 영향으로 김 군수는 공직 생활과 퇴직 후 기업 CEO 시절 중요한 프로젝트를 결정해야 할 때 적극적인 사고와 저돌적인 추진력이 가능했다고 한다.
김 군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실업계인 대구상고로 진학했다. 대구에 있는 형은 인문계로의 진학을 원했으나, 두 살 적은 조카가 경북여고를 다녀 어쩔 수 없이 실업계를 택했다.
실업계 진학은 김 군수가 지금도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고교 진학을 앞두고 호롱불 밑에서 늦은 밤까지 공부했고, 어머니가 기름 닳는다고 불을 끄라고 재촉해도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했었기에 떠올리기 싫은 과거일 수밖에 없다. 이 무렵 김 군수는 대구상고, 우 교육감은 대구고교로 각각 진학했고, 수시로 만나 우정을 나누고 서로 조언을 하는 사이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후 김 군수는 외환은행에 입사한 후 성균관대 야간 경제학과에 들어가 공무원 시험에 매진했고 4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공직 생활
김 군수는 어릴 때부터 공무원에 대한 꿈이 있었다. '행정고시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이후 불과 1년 6개월여를 공부한 끝에 4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김 군수는 "외환은행에 들어갔다가 대학을 다녀보니까 내가 은행원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해 2년 후 은행을 그만두고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행정고시를 준비했고, 내가 행정고시에 빨리 붙은 편"이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총무처에서 근무하다가 해군 장교로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농림부로 복귀해 복지과장 시절 미국 위스콘신주 매디슨주립대 2년 석사과정을 마쳤다.
김 군수는 "현 정부에서 요직에 있는 상당수의 고위 공직자들이 위스콘신 출신이 아니냐"는 물음에는 웃음으로 대신했다. 유학을 마친 김 군수는 이후 농림부 축산'식량'유통'농정분야 국장 및 대변인 등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농업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렇듯 김 군수는 공직의 길로, 우 교육감은 대학 졸업 후 학자의 길로 각자 가는 길은 달랐으나,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를 바가 없었다. 김 군수가 농림부 시절 어려운 현안이나 문제가 발생하면 당시 영남대 교수인 우동기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다.
두 사람은 협의를 통해 현안 문제를 해결했고, 우 교수는 특이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 분야 전문가들을 소개해 주는 등 멘토로서의 관계를 이어나갔다. 김 군수는 또 우 교육감이 영남대 총장이 됐을 때 학교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 지원하려고 적극 노력했다.
앞서 우 교육감은 김 군수의 농림부 등 공직 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등 두 사람의 관계는 어린 시절부터 멘토로서 서로가 원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나 "고향 사랑 부분에서는 우 교육감이 앞서는 것 같다"는 것이 김 군수의 평가다.
◆고향 발전에 대한 복안과 각오
김 군수는 농림부 차관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서울시 농수산물공사 사장, 한국단미사료협회 회장을 거쳐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경북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며 민선 군수로 당당하게 당선됐다.
김 군수가 고향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한 것도 우동기 교육감이다. 2005년 농림부 차관을 그만두고 경북대 초빙교수로 있을 때 의성군수로 출마해보라고 끈질기게 권유하기도 했었다.
김 군수는 "성인이 된 후 다른 친구들도 많이 있었지만, 우 교육감과는 서로 다독여주는 역할을 했다. 고향 군수로 출마하기 위해 고민할 때도 그랬고, 선거를 준비할 때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고 했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김 군수는 의성군수로, 우 교육감은 대구시 교육감으로 출마해 두 사람 모두 당선됐다. 김 군수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한 명은 고향 군수가 되고 한 명은 대도시 교육감에 당선됐다"며 "나야 고향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었지만, 우 교육감은 대구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느냐. 대단한 사람"이라고 우 교육감을 치켜세웠다.
김 군수는 끝으로 "의성은 경북의 중심이면서 면적도 넓은 웅군이다. 행정고시 합격 후 수습사무관으로 잠시 의성에 근무할 무렵 의성 인구는 20만 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6만 명이 안 된다"며 아쉬워했다. "의성에는 아직 농업 이외에는 뚜렷한 성장 동력이 없습니다. 중앙부처 근무 경험을 토대로 '의성을 전국에서 가장 앞서가는 지자체'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의성 이희대 기자 hd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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