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야말로 토종이 우세한 장르다. 몸으로 웃기는 슬랩스틱 코미디는 저급한 것으로 취급받으며 그 전통을 이어나가기가 어렵게 되어버렸고, 현대에는 말로 웃기는 버벌 코미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코미디는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은 다음 풍자로 이어지는 것으로, 그 어느 장르보다 현실에 지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므로 해외 코미디가 한국에 상륙하기란 몹시도 어려운 일이다. '앵커맨'(2004) 같은 미국에서는 역대급 코미디로 추앙받는 할리우드 코미디가 국내에 개봉조차 못 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미국에서 폭발적인 흥행력을 자랑한 영화들도 국내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쪼그라들고 말았다.
'그러니 프랑스 코미디는 말해서 뭣하랴…'라고 생각하는 순간, 2012년 조용히 흥행 돌풍을 일으킨 '언터처블: 1%의 우정'이 떠오른다. '아멜리에'(2001), '수면의 과학'(2006)처럼 귀여운 상상력이 감칠맛 나던 우아한 프랑스 코미디도 생각난다.
코미디라고 해서 웃음으로 가볍게 시간을 보내려고 작정하기보다는, 조금만 신경 써서 그 나라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그 사회의 모순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공감도가 높아지며 지적인 유머감각을 즐기게 된다. 코미디야말로 바보들의 잔치가 아니라 공감도가 충만한 지식인들의 놀이터다.
올해 프랑스에서 개봉과 동시에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선풍을 일으킨 코미디 영화가 이번 주 국내 관객과 만난다. '컬러풀 웨딩즈'의 원제는 '계속되는 못된 결혼'(Serial Bad Weddings)이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다문화사회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프랑스의 현재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영화다. 이 영화는 첨예하고 심각한 다문화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서로 다른 것들에 마주하며 이를 즐겁고 웃기며 흥겨운 것으로 대하는 올바른 의식을 보여준다.
프랑스 상류층 클로드 부부의 딸 셋은 1년을 주기로 결혼하는데, 이들은 각각 아랍인, 유태인, 중국인과 결혼한다. 이제 막내딸만 남은 상황. 보수적이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에 뼛속까지 순수 혈통인 프랑스인 클로드 부부는 막내딸만은 가톨릭인과 결혼하도록 열심히 기도한다. 클로드 부부는 여러 인종과 혈통이 뒤섞인 이 집안에서 자국의 전통을 고수하는 사위들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사위끼리는 서로의 입장 차이와 문화충격으로 인해 반목하기 일쑤다. 드디어 막내딸이 결혼하겠다고 나서고, 가톨릭인에다 파리지앵스러운 이름을 가진 완벽할 것 같은 사윗감이 나타난다. 클로드 부부는 자신들 앞에 선 레게머리 흑인을 보며 마지막 희망이 무너진 데 대해 절망한다. 영화는 막내딸의 결혼식에 초대되어온 아프리카에서 온 사돈과의 심각하지만 웃긴 좌충우돌을 그린다.
영화는 유럽 한복판에서 일상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인종차별 유머를 아무렇지 않게 가져다 쓰는데, 이는 다른 문화와 세계라고 구분 지으며 단단하게 형성된 막을 오히려 무장 해제시켜 버린다. 이러저러한 편견의 한복판을 정확하게 공격하며 차별주의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정치적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아랍인은 무뚝뚝하고 마초적이며, 유대인은 돈만 밝히는 수전노이고, 중국인은 예의가 없고 싸가지는 밥 말아먹었다고 대놓고 공격하는 식인데, 우월한 지위에 놓인 1세계 사람들이 타인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정확하게 공략한다. 아프리카 사돈이, 그동안 프랑스가 아프리카를 착취해왔으니 결혼식 비용은 프랑스 부모가 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당당하게 요구할 때는 묘한 쾌감이 느껴질 정도다.
영화는 다양한 이주민들이 형성하는 다문화 속에서 일어나는 진지한 갈등을 한 가정 내부로 가지고 들어와 유쾌하게 해결책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가족 간의 사랑으로 상대를 인정하라는 것인데, 복잡하고 거친 실제 세상과 달리 이 가족이 보여주는 파라다이스는 한갓 판타지일 수 있다. 그러나 형형색색의 무지개 가족이 제시하는 이상향이 저 멀리 스크린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것이라는 희망은 세상을 조금 더 살맛 나게 할 것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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