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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신일선

작년 중국에서 우연히 '수업료'라는 일제강점기 영화가 발견되었다. 디지털 복원 뒤 열린 기자 시사회의 반응은 역대 조선영화 중 최고 걸작이라는 분위기이다. 10월 25일 있을 일반인 시사회에서도 같은 평가가 나올지 벌써 궁금해진다.

그 시대 영화 중 필름이 전해지는 영화가 대략 10% 정도에 불과함을 고려할 때 이 영화의 발견은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3천만의 연인'이라 불리며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군림했던 문예봉은 그런 의미에서 참 운이 좋은 배우이다. '미몽'을 비롯한 6편이 현전한다. 이번에 '수업료'의 발견으로 출연작이 7편으로 늘었다. 무엇이든 잘 풀렸던 문예봉은, 식민지 시절에는 일제 선전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세속적인 영달을 누리다가, 월북 이후에도 '인민 배우'로 명성을 떨친다. 신은 그녀에게 미모, 그리고 그것에 어울릴 만큼의 화려한 인생을 주었고, 그녀는 특유의 재능으로 그 인생이라는 이름의 배역을 잘 소화한 듯 보인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나운규의 '아리랑'에는 최초의 '국민 여동생'으로 불렸던 비운의 여배우 신일선이 등장한다. 영화 '아리랑'의 대성공과 더불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이 조용한 여배우는 그 뒤, 원치 않았던 결혼과 파혼, 자살기도, 아이들과의 생이별 등으로 굴곡진 삶을 살아간다.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도 '청춘의 십자로' 단 한 편밖에는 남지 않아서 더 애잔하다. 확인할 수 있는 그녀에 관한 마지막 증언은 미당 서정주의 약간은 주책없는 회고이다. 어릴 적부터 그녀의 미모를 동경했던 서정주는 어느 날, 그녀가 어디선가 술을 팔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찾아간다. "여, 거 주름살이 자잘하게 앉은 게 더 고으이." 이러면서 술김에 손도 한 번 잡아보고 그랬다는 자백인데, 어쨌든 술이 깨고는 자신도 상당히 미안했더라는 말도 덧붙여져 있다.

신일선은 1990년 불가에 귀의한 채로 쓸쓸히 죽었다. 문예봉은 1999년에 사망했는데 신일선보다 10살 어린 나이로 치면 둘은 결국 수명에서의 운수는 비슷했던 것 같다. 실제 성격도 되바라졌다는 문예봉이 너무 얄미워서일까, 언젠가 진짜 감동적인 기적이 일어나 나운규의 '아리랑'이 우연히 발견되기를 기대해본다. 엄혹했던 식민시대, 그 표상과 같은 삶을 살았던 신일선이 다시 우리 눈앞에 설 수 있다면, 우리는 100년 전 묻어 두었던 민족의 눈물을 조용히 발굴할 수 있을 텐데. 어찌 권력 앞에 웃었던 문예봉에 비하랴! 15살 고운 '영희'가 다시 한 번 하얗게 웃을 때, 우리는 한 여배우의 마지막 모습을 주름 하나 없는 순백의 이미지로 영원히 우리 기억의 박물관 속에 전시할 수 있을 텐데.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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