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유럽 미술관 기행] ③ 현대 회화의 거장 마티스

붓 대신 가위…색을 조각하다

최근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열린 마티스의
최근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열린 마티스의 '컷-아웃'전.

현대미술이 어려워진 이유는 그림에 철학적 사유를 지나치게 개입시키는 경향 때문이다. 회화가 개념을 전달하기 위한 보조적인 기능을 수행하거나 어떤 논리의 이해를 돕도록 작동하는 것에 우리는 만족하지 않는다. 미술에서 기대하는 바는 결국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이고 신체로 느끼는 순간의 전율 같은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그림의 제모습이다. 마티스의 회화는 지성적이기 이전에 감각적인 면에서 더욱 생생한 활기를 느끼게 한다.

런던의 테이트모던은 지난달까지 마티스의 '컷-아웃'전을 개최했다. 20세기 초 현대미술의 시작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표현주의 작가의 말년을 조명하는 획기적인 전시이기도 했지만 특히 색종이를 오려서 붙이는 독창적인 형식의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모았다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54년 그가 작고하기 전까지 만든 120여 점 이상의 콜라주 작품들이 전시되었는데,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침대와 휠체어에 의지한 상태에서도 조수의 도움을 받아 창작을 멈추지 않았던 조형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었다.

흔히 잘못 그린 비뚤비뚤한 그림을 어린아이 그림 같다고 한다. 피카소는 어린아이처럼 그리는데 평생이 걸렸다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이는 사람이 복잡한 개념을 내려놓고 단순해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악화된 병세로 어눌해진 몸놀림을 하면서도 어린아이처럼 가위를 들고 종이를 오리고 붙여 탄생시킨 자유로운 색채와 형태들은 황홀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피카소의 마지막 그림들에서 우리가 본 것이 영원히 제어하지 못할 성적 본능이었다면 마티스는 무욕의 순수한 창안을 드러냈다.

마티스는 '야수파'의 창시자였다. 르네상스에서 시작된 자연주의 미술의 전통 안에 굳어온 색채와 형태에 대한 오랜 관념으로부터 현대미술로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주역이었을 만큼 그의 젊은 시절의 열정도 강렬했다. 다만, 그는 내면의 열정을 무서운 절제력으로 다스렸고 예술을 통해 과민한 긴장을 달랬다. 그래서 늘 평온한 예술, '안락의자' 같은 예술을 원했다.

사실 예술정신은 야수 같지 않으면 안 된다. 길들여진 예쁜 애완견 같으면 얄팍한 유혹에 쉽게 넘어갈 사람의 적당한 위안거리밖에 안 될 것이다. 대개 위대한 예술은 충격적이고 도발적일 때가 많다. 젊은 시절 마티스와 그의 동료들 그림이 우리에 갇힌 맹수가 으르렁거리듯 사나웠다는 것은 길들여진 타성과 관습에 젖은 의식을 참신한 감각으로 일깨워줄 수 있는 예술혼이 그들에게 살아있었음을 방증하는 말이다.

이 전시가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 하나는 마티스의 그림이 원시적인 색채의 광휘와 자유로운 형태를 추구했으면서도 사랑과 평화의 감정이 그의 영원한 주제였다는 점이다. 한때는 아주 관능적인 오달리스크를 그린 적도 있고 그때는 육체를 떠나지 못해 통속적인 주제에 머문 듯도 했다. 또 환원적인 형태의 장식적인 무늬들에 도달한 적도 있었지만 관념적이랄 수 있는 추상적인 그림들에서조차 그의 화면은 육체적인 감각을 잃지 않았다.

이 전시는 또 일생 미의 쟁취를 위해 벌여온 투쟁에서 마티스가 올린 개가를 보여준다. 암과 투병하면서도 생의 마지막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붓 대신 든 가위로 드로잉을 하고 색을 조각하는 노장의 모습이 미술수업의 첫 단계로 돌아간 듯 보이는 것도 뜻깊다. 육체는 늙음에 굴복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세상의 지혜를 깨친 천진한 상태에 이른 듯 그의 색종이 오리기 작업이 펼치는 세계에는 그림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함과 풍부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한때 자신이 즐겼지만 더 이상 가볼 수 없는 아름다운 남프랑스 정원의 풀들과 지중해 바다 아래 유영하는 생물들이다. 지금 이 전시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이어지고 있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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