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소비 성향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미국의 음악전문 케이블 채널 M-TV의 톰 프레스턴(Tom Freston)은 21세기 대중들의 소비 성향을 분석하면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묘함을 가진 시대라고 평했다. 대중문화가 본격적인 소비 시대를 열었던 1950년대 이후 대략 10년을 주기로 대중들의 소비 성향은 구분할 수 있었고 예측도 가능했다.
1960년대까지 대중들은 집단적인 자의식을 발현할 수 있는 문화에 몰두했고 포크나 록음악이 상징으로 자리했다. 1970년대가 되면서 '자기중심의 시대'(Me Decade)가 도래했고 대중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화 소비에 몰두했다. 베트남전이 끝나고 일시적 집단성이 발현되기도 했지만 이후 대중문화의 소비는 개인적인 성향이 우선했다.
변화는 1990년대 들어 일어난다. 이 시기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미디어 변화가 일던 시기다. CD와 DVD가 보편적으로 확산하고 복제는 용이하게 된다. 이어 등장한 MP3 등 일련의 디지털 미디어 파일은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날개를 단다.
이 시기부터 문화 소비의 흐름은 예측하기 힘든 영역이 되어버린다. 대중들은 조잡한 과대광고에 홀린 듯 움직였고 자본은 대중들에게 최면을 걸며 유행의 흐름을 미리 제시했다. 보다 빨라지고 거대해 진 인터넷 속도는 저용량 미디어 파일뿐만 아니라 영화 같은 대용량 미디어 파일도 손쉽게 전송하고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했다.
불법 다운로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지만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 등을 제외한 서방 국가의 문화 소비는 오히려 양적으로 급속하게 확대되었다. 대중들은 점점 싸고 편리한 형식의 문화 상품을 요구했고 산업은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죽어간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역사 동안 투자되거나 연구되지 않던 대중의 행동 분석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한국 문화 소비도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이런 흐름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중들에게 회자하는 문화 생산품은 대중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마케팅 기법이 적용되었다. 이를 나쁘게 볼 일은 아니지만 한국의 경우 근거 없는 분석이 난무했다. 주먹구구식 분석에 요령도 근거도 없으니 마케팅도 조잡할 따름이었다. TV쇼는 이미 문화 생산품의 광고 시장으로 전락했고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도움을 주고받는 수준이다. 이건 대단해라고 말하고 있지만 허접한 광고 수준이다.
쇼의 출연자들은 철저히 계산된 말솜씨로 대중에게 최면을 건다. 어디에도 스타의 이미지만 있지 소비할 상품은 없는 허망함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국 대중문화의 모습이다. 심지어는 자본의 교환과 무관한 공공 영역에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자본이 만들어 낸 생산물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공공 영역의 생산물이 행동분석과 마케팅에 의존해서는 곤란하다. 더욱이 저급한 TV쇼 흉내 내기는 볼썽사납다. 물론 공공 영역의 문화생산자들은 항상 볼멘소리를 한다. 예산 부족과 관심에 호응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인데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이지만 실은 핑계에 불과하다. 볼멘소리를 다른 말로 바꾸면 무지와 무례 정도일 것이다.
프랑스 정치가 토크빌(Alexis de Toqueville)은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고 했다. 민도(民度)에 따라 국민은 그 수준의 정부를 가질 것이다. 민도를 요즘은 문화 수준이라는 말로 바꿔 사용하는데 '대중들은 문화 수준의 정도에 따라 그에 맞는 생산물을 가진다' 정도로 바꿔도 말이 된다. 생산이 무례해지면 소비는 무지해진다. 적어도 공공 영역 문화 생산자들은 염두에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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