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명 부르기를 꺼리는 것은 고대 중국의 풍습에서 비롯됐다. 이름이 함부로 알려지면 주인의 인격이 상대방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실명경피'(實名敬避)인데 학자들은 춘추시대 이후 사람의 호칭인 '자'(字)가 일반화된 것으로 봐서 이 풍습도 그 무렵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장자는 "이름은 실체에 따른 허울"(名者實之賓也)이라고 했지만 고대인들은 '이름은 사람의 인격과 일체'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글자 뜻이나 어감이 좋은 글자를 이름으로 택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뜻이 흉하거나 동물'곤충'신체의 명칭에 해당하는 글자, 두 가지 음을 갖거나 잘못 알기 쉬운 글자는 피했다. 그런데 역사적 인물이 이름에 쓴 평이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1990년 호적법 개정 때 어려운 한자나 전산화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인명용 한자를 2천731자로 제한한 탓이다. 8번의 규칙 개정으로 현재 인명용 한자는 모두 5천761자다.
내년부터는 표준 한자 2천381자가 추가돼 8천142자를 이름에 쓸 수 있고 한자 개명도 가능해진다. 추가된 한자 중에는 정선(鄭歚), 지봉 이수광(李睟光)의 '歚'자나 '睟'자도 포함됐고 ''(禝)자도 풀렸다. 자형과 음가가 통일돼 통용되는 한자는 이름에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는데 제외됐던 '달빛 교'(晈)는 교(皎)와 같은 글자여서 호적에 올릴 수 있다.
한나라 때 최초의 자전 '설문해자'에는 중복된 글자를 빼면 모두 8천61자의 한자가 나온다. '강희자전'에는 4만7천35자, 현재 가장 큰 한자사전인 '한어대자전'에는 5만4천678자가 수록됐다. 역사상 등장한 한자를 모두 포함하면 약 9만 자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8천 자는 사실상 거의 모든 한자를 인명에 쓸 수 있다는 의미다.
1988년 중국 정부는 현대 중국인이 소통에 필요한 한자 수를 6천763자로 조사해 발표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발표한 일반 상용한자 수는 3천500자다. 현대 중국어에서 이 활용 빈도가 99.48%로 조사돼 일반인은 이로써 충분하고, 전문가라도 7천 자를 넘어서지 않는다고 봤다. 일본은 1948년 '이름에 상용평이한 문자를 사용'하도록 인명용 한자를 제한해 현재 2천997자다. 이런 추세에도 대법원이 인명용 한자를 대폭 확대한 것은 국민의 성명권 보장과 편의를 고려했다는 점에서 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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