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단추

단체에서 야유회를 간 날이었다. 삼천포 화장실에서 바지 단추가 떨어졌다. 다행히 단추는 손에 쥐었으나 실과 바늘이 없었다.

준비된 옷핀도 없었다. 오래된 바지라 지퍼마저 신통치 않아 여차하면 발목까지 내려올 판국이었다.

손으로 간신히 허리춤을 움켜잡고 화장실을 나와 사방을 둘러보았다. 도움을 청할 일행을 찾았으나 마땅치가 않았다. 공적인 모임이라 무관한 사이가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대부분이 남자인 것도 문제였다. 옷핀이라도 살 수 있을까 해서 슈퍼를 찾았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내린 곳이 바로 선착장이었기 때문이다.

 "어디 가세요? 분수 옆 벤치로 회 드시러 오라는데요."

회장 부인이 구태여 나를 벤치로 데려가 자리에 앉힌다. 시장에서 사 온 회를 몇 사람이 차려 놓는데, 본의 아니게 나는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얌체족이 되었다. 거든답시고 바지에서 손을 뗀 순간 희한한 광경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드세요."

"네, 네."

나는 심지어 옆 사람에게 음료수를 권할 수조차 없었다. 부실한 지퍼까지 자리에 앉는 순간 열려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엉덩이조차 들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건배하는 순간이 찬스였다. 어수선한 틈을 타 가까스로 지퍼를 수습한 나는 건배가 끝나자마자 시장으로 향했다. 생선가게를 거쳐 야채점을 건너 건어물전을 지나니 작은 슈퍼가 보였다. 옷핀은 없고 실과 바늘만 팔았다.

나는 빼앗듯이 바늘을 사들고 화장실로 돌진했다. 변기 위에 앉아 바지에 단추를 달고 있자니 밖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 안사람이에요. 불편하신가 해서 뒤따라 왔어요. 괜찮으세요?"

이쯤 되면 다정만 병이 아니다. 친절도 병이다.

"네, 네. 괜찮아요."

나는 말짱한 얼굴로 화장실을 나왔다. 몸에 단추를 달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미스코리아도 메르켈 총리도 부럽지 않았다. 단추 하나에 이런 엄청난 힘이 숨어 있을 줄이야!

"죄송해요, 가시죠."

나는 마치 머리에 왕관이라도 쓴 사람처럼 당당하게 허리를 곧추세웠다. 벤치에서 회장이 팔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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