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돌배 꽃이 핀다. 배꽃보다 작은 하얀 꽃송이가 마치 눈을 맞은 듯 송알송알 매달려 있다. 초봄의 양광을 받으며 꿀벌들이 윙윙 날며 꿀을 채취한다. 미당의 '상리과원'을 보는 것 같다.
벌들은 꿀을 따서 뱃속 꿀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간다. 벌통 속에 저금하고 잠시도 안 쉬고 돌아온다. 하루 종일 개미같이 일을 한다. 벌만큼만 부지런하면 세상에 가난하여 굶주린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범죄나 이혼율이 현저히 내려갈 것이다. 이혼도 대부분 돈 탓이니까.
가을이면 돌배나무에 탁구공만 한 돌배들이 올망졸망 열린다. 먹으면 딱딱하고 물기가 적어서 맛도 없다. 그런데 동네 개구쟁이들이 걸핏하면 조롱박처럼 매달렸다. 어느 날 오후 돌배나무에 혼자 올라가서 돌배를 땄다. 서너 개 땄을까? 갑자기 입술이 따끔하더니 불에 댄 듯이 아팠다. 말벌에게 쏘인 것이다. 입술은 삽시간에 당나귀 나발같이 퉁퉁 부어올랐고.
울면서 돌배 주인집으로 달려갔다. 그 집에는 나보다 여섯 살이 더 많은 누나뻘의 예쁜 처녀가 살고 있었다. 누나는 퉁퉁 부어오른 내 입술을 보더니 단숨에 사건의 전모를 알았다. 다짜고짜 나에게 입술을 쩍 하며 뽀뽀를 했다. 놀라서 멍하니 있는데 누나 입에서 아까 쏜 말벌의 침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장독대에 가서 된장을 퍼 가지고 와서 입 주변에 발랐다. 혀를 쯧쯧 차며 그게 뭣이 먹을 게 있다고, 며칠 갈 건데 하고 중얼거리며.
가을이면 말벌들의 침에 독이 오른다. 말벌들은 꿀벌보다 침의 독이 육백 배나 강하다. 그런데다가 다른 벌들과 달리 침을 몇 번이나 공격해도 멀쩡하다. 물론 덩치도 수십 배 크다. 농가의 헛간이나 산속의 땅 밑에 사는데 엄청 공격적이다. 해마다 몇 사람씩 인명을 희생시키는 벌들이 바로 이놈이다.
우리는 심심하면 밭둑이나 산의 땅벌을 괴롭히러 갔는데 덩치가 파리보다 작은 이 녀석들 또한 성질이 말벌 못지않다. 글자 그대로 벌떼처럼 몰려오는데 하늘이 새까맣게 날아와서 사정없이 육탄 공격을 펼쳤다. 땅벌에게 쏘여도 고통은 말벌 못지않았다. 우리는 도망가며 꼬꼬댁 꼬꼬 하며 닭 울음소리를 냈다. 벌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것이 닭이기 때문에 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닭 울음소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인해.
생각해보면 인간에게 가장 많은 이익을 갖다 주는 곤충이 벌이다. 꽃가루를 배달하여 열매를 주지, 영양 많고 맛있는 꿀을 주지 않는가. 벌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단다. 공해나 농약 탓도 있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생물의 목숨 중에 소중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어딘가 쓸모가 있어서 조물주가 만드셨다. 하찮은 미물인 벌 한 마리에게도 봄볕 같은 따뜻한 사랑과 애정을 주어야 할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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