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회동굴은 석회암이 녹아서 만들어지는 카르스트(Karst) 지형이 많은 강원도 삼척, 영월, 평창과 충북의 제천, 단양 등지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이 지역에 우리나라 석회동굴 대부분이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소개할 동굴은 영월군 북면 문곡리에 위치한 시루봉굴. 동굴이 위치한 산봉우리 이름이 시루봉이어서 '시루봉굴'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산기슭에 차를 주차하고 장비를 챙겼다. 산 속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까지 할 계획이라 짐이 많았다. 동굴에서 사용할 장비와 막영구, 취사구까지 가지고 가려니 100ℓ짜리 등산배낭이 비좁을 정도였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야간에 비까지 내려 산길도 미끄러웠다. 잡목을 헤치고 가야 하기에 뻣뻣한 가방재질(옥스퍼드 원단)로 된 동굴복. 허리 위 반쯤은 새빨갛고, 허리밑 부분은 파랗게 만들어 놓은(마치 태극기의 태극 색깔처럼) 촌스러운 동굴복을 착용했다.
동굴 탐험에는 아래 위 원피스로 된 동굴복이 필요하다. 동굴복 없이 평상복을 입고 들어갈 경우 기본적으로 진흙을 비롯한 온갖 이물질들이 속옷을 뚫고 피부에 닿는다. 또 날카로운 동굴 생성물 틈에서 기어 다녀야 할 경우가 많아 뻣뻣하고 방수가 잘되는 옷이 꼭 필요하다.
산에서 동굴 입구를 설명하는데 주변 지형지물이나 무덤, 철탑 등이 많이 이용된다. 예를 들자면 '두목마을에서 시루산 정상을 향해 가다가 7부 능선쯤에 무덤 2구가 있는데 그곳에서 왼쪽 사면을 타고 50m 가면 입구가 나온다'라는 식이다. 그렇게 기억을 더듬어 입구 부근에 도착, 평평한 곳에 텐트를 쳤다.
비 오는 야간에 산속 무덤가에 텐트를 치고 있으니 스산한 기분이 들었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두려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동굴에 들어갈 장비를 챙기고 헤드램프를 헬멧에 결속했다. 헬멧에도 헤드램프를 결속하는 부분이 있지만, 탐험 중 벗겨져 버리면 시야를 잃는 중대한 위기가 오기 때문에, 푸른색면 테이프(청테이프)로 보강해 단단히 결속했다. 준비하지 않은 장비가 없는지 다시 한 번 체크를 하고 간단히 간식을 먹은 후 동굴로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하고 들어가야 할 것이 있다. 화장실 볼일이다.
동굴 안은 화장실이 없다. 협소하고 폐쇄된 동굴에서 좋지 않은 냄새를 맡고 민망한 상황을 만들지 않고 동굴 환경을 최대한 원형대로 보존하려면, 원래 동굴에는 없는 유기물(분뇨)을 투입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동굴 탐험 전에는 가급적 속을 비우고 들어가야 한다.
동굴 입구로 가는 중 비가 계속 내려 온몸이 흠뻑 젖었다. 동굴에 들어가면 더 이상 비 맞을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동굴로 들어갔다. 입구는 내린 비로 인해, 벌써 진흙 범벅이 되어 있었다. 로프를 설치하고 경사 50도 정도의 미끄러운 진흙길을 조심조심 내려갔다. 진흙이 미끄러워서 다리를 어깨 너비 이상으로 벌리고 넘어지지 않게 자세를 잡아도 미끄러워 한쪽 무릎을 벽에 짚으면서 하강했다.
경사면 하강이 끝나고 본격적인 수직 구간에 돌입했다. 시루봉굴은 수직동굴 중에서도 수직구간이 길고 난이도가 꽤 있는 동굴이다. 수직구간의 동굴 모양이 참 재미있다. 입구가 좁은 와인병을 성냥개비만 한 사람이 줄을 타고 코르크 틈 사이로 내려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수직구간 시작 지점에는 앞서 다녀간 동굴팀에서 설치한 볼트 구멍이 있었다.
그곳에 볼트를 돌려 넣고 확보를 한 후 혹시 파손될 것을 대비해 근처 석순에도 보조확보를 단단하게 했다. 입구의 병목구간을 몸을 비비면서 간신히 내려가니 '와' 하고 탄성이 나올 만큼 공간이 넓어졌다. 갑자기 길이 넓어지면서 커다란 원통형의 동굴지형이 탐험팀을 감싸는 듯했다. 오랫동안 물이 흐르면서 침식으로 이뤄진 지형이다. 엄청나게 큰 굴뚝을 로프 한 가닥에 매달려 내려가면서 자연이 만들어 놓은 벽화를 감상했다. 동굴베이컨, 커튼, 석화 등등 많은 생성물이 놓여져 있었다. 천연의 샹들리에들이 램프빛에 반짝인다. 그렇게 45m(건물 15층 높이)를 장애물 없이 바로 내려가니 바닥에 닿았다. 하강은 쉽고 신나지만, 바닥에 내려서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여길 어떻게 다시 올라가나….'
그렇게 막장까지 탐험해 측량도 하고 생성물, 생물도 조사한 후 다시 로프가 있는 곳으로 왔다. 랜턴의 줌을 맞추고, 최대 밝기로 위쪽 로프 끝을 비춰보려 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선배 한 명이 먼저 등강을 시작했다. 20분여 지났을까. 더 이상 오르는 모습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고 신음소리만 계속 들렸다. 밑에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앞사람이 등강에 실패해 좁은 입구에 끼여버릴 경우, 워낙 좁은 입구여서 더 이상 해결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바깥에서 구조대가 오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온갖 걱정을 하며 기다린 지 40여분 만에 미처 숨도 고르지 못한 한마디가 위쪽에서 들렸다. '완료!' 정말 뛸 듯이 기뻤다. 40분간의 온갖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려갈 때도 좁아서 몸을 비비면서 겨우 내려갔던 입구 부분에, 덩치가 큰 사람이 힘을 주며 올라가니 몸이 끼여 등강 자세를 취할 공간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만 덩치가 더 컸다면, 혹은 기술이 모자랐다면, 정말 큰일 날 뻔한 상황이었다.
힘들게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니 비가 그쳤다. 맑게 갠 하늘엔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안전하게 탈굴(동굴에서 나옴)했다는 기쁨에 텐트로 향하는 길이 여느 때보다 가벼웠다.
김재민(대구산악연맹 일반등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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