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전한 도로 행복한 교통문화] 나쁜 운전자를 만드는 도로…덜컹거리는 도로(하)

지워진 중앙선·안전시설 부족…"경북지역 지방도 운전하기 겁난다"

구미시 산호대로 굴곡도로에서 승용차가 보도를 침범하면서 울타리 난간을 충돌해 운전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구미경찰서 제공
구미시 산호대로 굴곡도로에서 승용차가 보도를 침범하면서 울타리 난간을 충돌해 운전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구미경찰서 제공
중앙선이 보이지 않는 청송군 진보면 추현리 35번 국도. 전종훈 기자 (사진 좌) 폭우로 절개지가 무너져 내렸지만 토사만 걷어냈을 뿐 두 달째 망가진 구조물이 방치돼 있는 안동시 길안면 914번 지방도. 전종훈 기자
중앙선이 보이지 않는 청송군 진보면 추현리 35번 국도. 전종훈 기자 (사진 좌) 폭우로 절개지가 무너져 내렸지만 토사만 걷어냈을 뿐 두 달째 망가진 구조물이 방치돼 있는 안동시 길안면 914번 지방도. 전종훈 기자

경북은 전국에서 세 번째로 도로망이 방대한 지역이다. 그러나 노후한 지방도로가 많고 교통 안전시설이 부족해 교통 안전도는 전국 최하위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교통 안전시설은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고 사망사고 등 대형 교통사고를 막을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도로 신설에 비해 기존 도로의 유지'보수와 교통시설물에 대한 투자는 옹색해 사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중앙선 보이지 않는 도로

이달 6일 오후 4시 42분쯤 안동시 남선면 구미리 35번 국도에서 승용차와 초등학교 통학버스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중앙선을 넘어 달리던 이모(80) 씨의 승용차가 마주 오던 버스를 미처 피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 사고로 두 차량의 운전자와 버스 안에 있던 초등학생 10여 명이 다쳐 치료를 받았다. 이 씨는 경찰에서 "중앙선이 잘 보이지 않아 차선을 지키고 있는지 가늠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3일에는 안동시 임동면 34번 국도에서 중앙선 침범 사고가 났다. 안동에서 청송 방향으로 달리던 신모(66) 씨의 1t 화물차량이 마주 오던 이모(52) 씨 화물차와 부딪힌 것. 이 사고로 신 씨가 숨지고 이 씨가 중상을 입었다. 사고 현장은 급커브로 굽은 내리막길이었지만 중앙선은 거의 지워져 낮시간에도 분간하기 힘든 상태였다.

경북 지역 국도의 차선 재도색은 경북도 종합건설사업소가 부산국토관리청의 위임을 받아 관리한다. 경북도 종합건설사업소는 매년 국도 474㎞ 구간의 관리 30억원 중에 차선 재도색에 4억5천만원을 투입하고 있다. 국도가 1년마다 차선 도색을 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확보된 예산은 관리 대상 도로의 63.2%인 300㎞ 정도를 도색하는데 한계다. 해마다 차선 없는 국도가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지방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북도가 관리하는 지방도 포장 구간 2천459㎞ 가운데 차선 도색에 배정된 예산은 5억7천만원 수준이다. 이는 400㎞ 정도를 도색할 수 있는 예산으로 4~5년이 걸려도 전체 구간을 도색하기가 불가능하다.

경북도 관계자는 "교통안전 시설 예산은 도로 확장'포장 예산보다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순수 지방비로만 충당하는데 뚜렷하게 예산 투입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어두운 건널목, 방치되는 무단횡단

지난 7월 25일 포항시 남구 연일읍사무소 앞 도로에서 정모(79) 씨가 몰던 오토바이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면서 김모(20) 씨가 몰던 스포티지 차량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운전자 정 씨와 부인 지모(76) 씨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경찰은 정 씨가 도로를 무리하게 가로질러 건너편 골목으로 진입하려다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가 난 지점은 평소에도 무단횡단이 잦아 사고 위험이 높았던 곳이었다. 경찰은 정 씨 등의 사망 사고 직후 중앙선 분리대를 설치했다.

구미시 고아읍 항곡리 초원맨션 앞 33번 국도도 중앙분리봉 설치가 시급한 곳이다. 제한속도가 시속 70㎞인데다 상가 밀집지역이지만 횡단보도가 150m가량 떨어져 있어 무단횡단이 잦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3일 오후 6시쯤에는 무단횡단을 하던 70대 남성이 차에 치여 숨지는 등 사망사고도 발생했다. 경찰은 교통안전심의위원회를 열고 대구국토관리사무소에 도로침범 방지용 방호울타리 설치와 노면 재도색, 횡단보도 설치 등을 요청했다.

조명이 없는 어두운 건널목도 사고 위험이 높다. 지난 7월 8일 밤 12시 50분 포항시 남구 대도동 남구청 앞 건널목에서 고모(30) 씨가 몰던 투싼 차량이 길을 건너고 있던 신모(54) 씨를 치고 달아났다. 사고 직후 방치된 신 씨는 결국 그 자리에서 숨졌다.

건널목에는 3색 신호등이 설치돼 있지만 야간이라 노란색 점멸등으로 바뀌어 있었고, 건널목을 비추는 조명이 없어 어두운 상태였다. 사고를 낸 고 씨는 60㎞ 제한속도를 무시하고 시속 100㎞ 이상으로 과속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신 씨의 사망 사고 이후 3개월 후에야 조명등인 건널목 투광기를 설치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시설물 개선

각종 재해로 인한 도로 유실이나 안전시설 부족으로 사고 위험이 높지만 대처는 늦잡죄기 일쑤다. 이달 24일 오후 안동시 길안면 천지리 양곡재 914번 지방도. 절개지에서 떨어지는 낙석과 토사를 막기 위한 철 구조물이 서로 뒤엉켜 있었다. 차량들은 절개지를 따라 서 있는 플라스틱 드럼통과 안전 테이프를 피해 좁은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달리고 있었다. 일부 차량들은 드럼통을 피해 중앙선을 넘기도 했다. 속도가 붙은 내리막길에서 중앙선을 물고 달리던 차량들은 마주 오는 차량을 발견하고 급하게 속도를 줄였다.

이 구간은 지난 8월 내린 많은 비로 무너져 내렸다. 당시 8t에 이르는 낙석과 토사가 도로 안으로 쏟아졌고 2시간 동안 차량 통행이 통제됐다. 그러나 토사를 걷어낸 응급조치 이후 두 달이 넘게 방치된 상태다. 이유는 단지 '예산 부족'이었다.

구미시 옥계동에서 시청방면으로 연결된 산호대로는 차량이 보도를 침범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두 달간 사망자만 3명이나 된다. 일부 구간의 굴곡이 심하지만 제한 속도를 넘어 시속 100㎞ 이상으로 과속하는 차량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5일 오전 6시쯤에는 20대 남성이 몰던 승용차가 이 도로 굴곡 지점에서 보도를 침범하면서 보행자 울타리 난간과 충돌해 운전자가 숨졌다. 9월 2일 오후 10시 20분쯤에도 같은 구간에서 승용차가 보도를 침범해 가로수와 충돌해 숨졌다. 사고 직후 다른 차량이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사고가 난 차량과 부딪히며 1명이 숨졌다.

구미경찰서 노재관 교통관리계장은 "이 구간은 굴곡 시작 부분에 빗물 고임 현상이 일어나는데다 주의표지판이 부족한 상태"라며 "구미시에 보도침범 방지를 위한 가드레일 설치와 미끄럼방지 시설, 주의 표지판, 시선유도봉 및 시선유도등 설치 등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구미 정창구 기자 jungcg@msnet.co.kr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포항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안동 전종훈 기자 cjh4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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